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이 지난 12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사법농단’ 1호 구속영장이 청구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선임재판연구관(현 변호사) 구속 여부에 관심이 모인다. 법원이 유 변호사 압수수색 영장을 세차례 사실상 기각한 점에 비춰, 압수수색보다 조건이 까다로운 구속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혐의가 중대한 데다, 이미 증거를 파기한 전례가 있어 구속 사유는 충분하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검찰이 지난 18일 청구한 유 변호사 구속영장에는 직권남용, 공무상 비밀누설,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 절도, 변호사법 위반 등 혐의가 적시됐다. 통상 구속영장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이나 도주 우려가 있을 때 발부된다. 통상 법원은 ‘중대한 혐의’ 하나라도 소명되고, 증거인멸 우려나 도주 우려 중 하나라도 입증되면 영장을 내줬다.
법조계는 유 변호사가 대법원 근무 때 취급한 행정소송을 퇴직 이후인 지난 6월 맡아 승소했다는 데(변호사법 위반) 주목한다. 변호사법은 ‘공무원으로서 직무상 취급하거나 취급하게 된 사건’을 수임하면 안된다고 규정하는데, 수석·선임연구관으로서 재판연구관 업무를 총괄하는 유 변호사는 이 사건을 ‘취급’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사건이 접수된 2014년 11월 신건 책임자는 선임연구관인 유 변호사였다. 이 사건이 심층연구조 사건으로 분류된 이후에도 마찬가지로 책임자였다. “사건 배당이나 보고 등에 관여한 바 없어 사건을 취급하지 않았다”는 유 변호사 주장이 설득력을 잃는 대목이다.
압수수색 영장 단계에서 인정되지 않은 절도죄 등이 구속 사유로 인정될지도 관심이 모이는 부분이다. 절도죄는 유 변호사가 연구관 보고서를 문서 째 들고 나간 의혹에 적용된 혐의다. 일단 보고가 이뤄진 이상 보고서의 ‘소유권’은 대법원에 있기에 절도죄도 성립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요구를 받고 재판연구관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 측근 박채윤씨 특허소송 쟁점과 전망 등을 담은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하게 한 것도 직권남용죄의 ‘의무 없는 일’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있다. 다만 유 변호사가 “청와대 요청인지 몰랐다”며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할 가능성도 있다.
법원이 ‘증거인멸 우려가 없다’고 재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인 관측이다. 지난 6일 두 번째 압수수색 영장 기각 뒤 유 변호사가 증거를 무더기 파기한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형법의 증거인멸죄가 자기 증거인멸은 처벌하지 않는 것과 달리, 구속 요건으로서 ‘증거인멸의 우려’는 자신의 증거인멸도 포함한다. 한 판사는 “증거인멸이 ‘우려’를 넘어 현실화됐다. 일단 혐의가 소명되면 영장 기각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국면마다 다른 진술을 내놓은 점도 유 변호사에게 불리하게 비춰질 수 있는 대목이다. 애초 유 변호사는 “(반출) 문건은 대부분 연구관들로부터 보고받은 뒤, 수정·보완한 (미완성) 문건”이라는 이유로 공공기록물법 위반죄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변호사법 위반 의혹이 제기된 사건에 대해서는 “보고 자체를 받은 바 없다”고 했다. ‘반출’ 문건은 보고받았고, ‘수임’ 사건은 보고받지 않았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는 “진술의 일관성 부족이 그 자체로 구속사유는 아니지만, 증거인멸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로는 볼 수 있다. 법원이 ‘다른 사람의 진술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고 했다.
다만 서울중앙지법 영장판사들이 이제까지 ‘사법농단’ 압수수색 영장을 까다롭게 심사해온 점은 유 변호사에게 유리한 부분이다. 압수수색 영장 당시 재판연구관 보고서 무더기 유출 의혹에 대해 ‘죄 없다’고 판단한 만큼, 관련 의혹도 일종의 ‘관행’으로 취급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는 20일 오전 10시30분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리는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심문)에서는 검찰과 유 변호사의 진검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심사 결과는 밤늦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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