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한겨레> 자료사진
법원의 ‘공식 역사서’에 해당하는 <사법연감>에 사법행정권 남용 및 사법농단 사태가 ‘스쳐가듯’ 단순 언급에 그친 것으로 확인됐다. 오히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태도를 ‘미화’하는 듯한 표현이 담겼다. 법원사를 적은 주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전대미문의 위기”(김명수 대법원장)에 걸맞는 반성의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법원행정처는 최근 2017년 한해 법원 주요활동과 이에 대한 평가, 재판과 사법행정 운용, 민·형사소송 등 각종 통계자료를 담은 <2018 사법연감>을 발간했다. 1200여쪽이 넘는 분량 중 지난해 초부터 불거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설명은 고작 한쪽에 그쳤다. 그마저도 법관 독립 침해 등 구체적 맥락은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채 ‘사법제도 개혁 준비 배경’이라는 항목에 포함시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사법연감은 “법원 연구회 중복가입 해소조치에 대한 판사들의 반발, 대법원 고위법관의 부당한 지시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행위가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 조사를 통해 드러나자 각급 법원 판사회의는 추가조사, 전국법관대표회의 소집을 요구했다”고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부실 논란을 부른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나 징계 등 후속 조처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대신 “양승태 대법원장은 엄정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소집해 개선책을 논의할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기술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정점’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 양 전 대법원장의 ‘해결 노력’을 부각시킨 것이다. 정작 양 전 대법원장이 일선 법관들의 추가조사 요구를 거부한 사실 등은 쏙 빠졌다.
사법연감에 실린 ‘각급 법원 사법일지’에도 ‘법원 가족사랑 걷기대회’ ‘독신자숙소 준공식’ 등은 넣으면서도, 법원 안팎 최대 관심사항이던 진상조사위 조사결과 발표나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 사실은 빠졌다. 사법연감 발행 책임자인 안철상 행정처장(대법관)은 소극적 태도로 비판을 산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3차 조사) 단장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 재임을 기념해 지난 7월 행정처가 펴낸 <국민과 소통하는 열린 법원>에서도 사법농단 사태는 전국법관대표회의 개최와 함께 3쪽 분량 정도로만 서술됐다. 사법농단 사태의 원인으로 지목된 상고법원 추진을 배경 설명 없이 ‘상고심 제도 개선’으로만 소개했다. 다만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 사퇴,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징계, 양 전 대법원장의 추가조사 거부 등은 언급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3일 “사법연감에 사법사 초유 사태를 이처럼 간략하게 언급한 것은 법원 내부 반성의 부재”라고 비판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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