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법원 전시관 안에 법관의 양심과 독립 등을 명시한 헌법 제103조가 적혀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한참 진행 중인 가운데, 현직 판사가 판사들 내부게시망(코트넷)에 글을 올리고 ‘사법농단’ 의혹에 대한 검찰의 절제된 수사를 주문하고 나섰다. 그는 “법원구성원들을 위해 수사검사들에게 간곡한 탄원서를 쓰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김태규 울산지법 부장판사는 8일 오전 코트넷의 ‘제도개선법관토론방’에 ‘이른바 사법파동을 겪으면서, 검찰에 대한 부탁과 법원이 반추해야 할 것들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에서 김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수사 관련 자신이 전해들은 현직 법관 및 법원 공무원의 ‘고충’을 토로하며 검찰에 ‘공정하고 위법이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김 부장판사는 먼저 “많은 동료법관들이 검찰에 소환되고, 또 어떤 법원에서는 사무관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모양”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그동안 검찰의 수사방식에 대한 이런저런 문제점들이 여러 차례 지적되어 오지 않았던 것도 아니(검찰로서는 아픈 이야기이지만, 수사과정에 스스로 삶을 포기한 유력자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검찰 구성원인 차장검사도 포함되어 있으니 너무 근거 없다고 몰지는 않을 것)”라며 “검찰에 공정하고 절차에 위법이 없는 수사는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자연스러운 심정의 발로”라고 했다. 이어 “노파심에서 꺼내는 말이지만, 이번 수사가 검찰 조직의 위상을 공고히 하고 법원에 대한 우위를 점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는 잘못된 목적의식이나, 진실을 보기보다는 언론이나 여론에 휩싸인다거나, 또 아니면 보이지 않는 그 무슨 압력 같은 데 휘둘려 이뤄지는 수사는 결코 아니길 바라고, 또 그럴 거라 믿는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또 “이 지점에 이르러서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 구차하고 참으로 체면 구기는 처사이며, 시민들로부터 조롱과 질책을 받을 일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이미 만신창이가 된 내부를 향해 욕지거리나 하나 더한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이어 법원이 검찰의 수사결과에 따라 ‘유죄의 심증’을 갖거나 언론이나 여론에 현혹돼 재판을 진행해온 점도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이) 수사기관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시민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으로 검찰이 정해주는 피고인은 당연히 유죄일 거라는 추정을 가지고 재판에 임하지는 않았던지, 또 언론이나 여론이 때려대는 피고인을 검찰이 데려오면 그 언론이나 여론에 현혹되거나 두려움으로 검찰의 수사결과 뒤에 숨어서 확인하고 승인해 주는데 만족하지 않았는지 (등을) 되살펴 보고, 미흡함이 있다면 그 잘못된 관행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후일 국민에게 돌려줄 것을 망각하고, 허깨비와 같은 그 작은 권력에 취해 칼을 휘두르며 그들에게 누가 되는 짓을 해서야 되겠느냐”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이다. 그는 지난 6월 청와대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풀어준 정형식 서울고법 부장판사의 파면 요구 국민청원을 법원행정처에 알린 사실을 두고 “우려와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하자는 안건을 제안하기도 했다. 김 부장판사는 2015년 대구지법 재직 당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었다가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된 시민 박성수씨에 대해 8개월 동안 구속재판을 진행하다가 집행유예로 석방하기도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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