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대법원이 통합진보당 관련 소송에 개입한 정황이 추가로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2015~16년 통진당 국회의원 의원직 확인소송을 진행하던 재판부들에 “헌법재판소 권한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하면 안된다”고 주문한 것으로 확인됐다.
24일 <한겨레> 취재 결과, 법원행정처는 2015년 헌법재판소의 정당 해산 결정으로 의원직을 잃은 통진당 의원들이 “의원직을 돌려달라”며 낸 행정소송을 심리하던 전국 법원 재판부에 “의원직 확인 권한은 법원에 있다. 헌재가 의원직 지위 여부까지 판단한 것은 월권”이라는 취지로 주문했다. 이 방침은 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대법관) 등이 참여한 회의에서 결정됐다.
당시 김재연·이석기 의원 등 국회의원 소송은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에서, 이현숙 전북도의원 소송은 전주지법 행정2부(재판장 방창현)에서 심리 중이었다. 이 가운데 서울행정법원 반정우 부장판사는 2015년 5월 같은 법원 고위법관을 통해 이런 행정처 요구를 접수하고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그해 11월 “헌재 결정을 법원이 다시 심리·판단할 수 없다”며 각하 판결하고, 국회의원직 확인 권한이 헌재에 있다고 했다.
당시는 양승태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립을 위해 헌재와 위상 경쟁을 벌이던 상황이었다. 헌재 권한을 인정하는 판결을 보고받은 양 전 대법원장은 ‘격노’했고, 행정처 간부들에게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행정처는 반정우 부장판사와 주심 판사에게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내용의 문건을 생산했다고 한다. 또 국회의원 소송 항소심을 맡던 서울고법 행정6부(재판장 이동원·현 대법관)에 “각하 판결은 안된다”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은 사법부에 있다”는 내용의 ‘지침’을 재판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진술과 각종 물증을 통해 이런 사실을 확인했다. 또 이와 관련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양 전 대법원장 등을 공범으로 적시했다.
서울고법은 그해 4월27일 통진당 국회의원들의 항소를 기각하며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에 대한 판단 권한은 법원에 있다”고 짚었다. <한겨레>는 당시 재판장이었던 이동원 대법관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은 “경위를 파악해보겠다”고 했다.
현소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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