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으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조사를 받기 위해 조사실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지난 27일 새벽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되면서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첫 재판 역시 초읽기에 들어갔다. 법원 내부에선 첫 구속영장 발부를 계기로 ‘재판 공정성’에 대한 의심이 상당 부분 해소된 만큼, 국회가 추진하는 특별재판부 구성 동력이 약해질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반면 재판에 넘겨질 전·현직 법관들의 수가 많고, 항소심 등 재판 장기화를 고려할 때 특별재판부 구성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피의자를 구속한 날로부터 최장 20일 이내에 재판에 넘겨야 한다. 임 전 차장의 경우 11월15일까지 기소를 해야 한다. 법원은 일반적으로 기소한 날 또는 늦어도 그 다음 날 사건을 재판부에 배당한다. 11월 중순이면 서울중앙지법에 사법농단 사건 재판을 맡을 재판부가 결정된다는 얘기다.
현재 서울중앙지법 1심을 맡는 형사부는 13곳이지만, 25부·31부·33부 재판장인 김선일·김연학·이영훈 부장판사는 양승태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에서 근무했다. 21부·32부 재판장인 조의연·성창호 부장판사는 영장전담판사 시절 신광렬 전 형사수석부장판사에게 수사 기록을 넘겼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성 부장판사는 또 양승태 대법원장 비서실에서 근무했다. 설령 임 전 차장 사건을 ‘공정하게’ 심리할 재판부를 찾아 배당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추가 기소가 불가피하다. 그때마다 재판 공정성 시비를 피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오히려 임 전 차장 구속을 계기로 특별재판부 구성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특별재판부 설치 법안을 발의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8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임 전 차장이 구속됐으니 이제 법원을 믿어도 되는 게 아니냐는 관점이 있을 수 있지만, 임 전 차장뿐 아니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등도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기소될 전·현직 법관이 적지 않고 1심뿐 아니라 2심도 중요하기 때문에 특별재판부는 여전히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최용근 변호사도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 발부가 법원의 ‘꼬리 자르기’인지 아니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까지 염두에 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특별재판부 설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관련자와 두드러진 인연이 없는 임민성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새로 임명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한 판사는 “법원의 태도 변화는 아직은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앞서 영장전담판사들은 압수수색 영장을 많이 기각했는데, 법원행정처나 대법원 근무 경력이 없는 임 부장판사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것은 ‘누가 재판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법원 안팎의 의구심을 더 키울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구속영장 발부가 오히려 특별재판부 구성 필요성을 더 부각했다는 것이다.
오는 29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의 정례 회동에서 특별재판부 설치 논의가 본격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은 “합리적 의심만으로 삼권 분립을 와해하고 사법부 독립을 훼손해선 안 된다”며 여전히 반대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민경 송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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