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 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 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말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1941년 봄, 17살 이춘식(94)씨는 일제가 노동력 징발을 위해 만든 ‘근로보국대’에 동원돼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 가마이시 제철소에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열악한 환경에서 노역에 시달렸다. 1944년 태평양전쟁 중에는 징병까지 됐다. 일본 고베 8875부대에서 미군포로 감시원으로 일했다. 해방 뒤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60년이 지난 2005년에야 서울중앙지법에 소송을 낼 수 있었다.
2008년 1심 패소, 2009년 2심 패소. 이씨는 2012년 5월 대법원에서 처음 이겼다. 그리고 다시 6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30일 오후 광주에서 올라온 이씨는 다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에 섰다. 대법원 최종 판결까지 가는 길은 17살 청년 시절 일본에 끌려갈 때만큼 고되고 길었다.
“목이 메어서 말이 안 나와요. 와주셔서 고맙고, 미안하고….” 30일 오후 1시50분께 임재성·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가 끄는 휠체어를 타고 이씨는 대법정에 도착했다. 휠체어에 앉은 이씨는 눈물을 훔쳤다.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여운택·신천수·김규수씨는 영정사진으로 이씨의 곁에 있었다. 자신의 재판이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박근혜 청와대와의 재판거래 대상이었기 때문에 늦어졌다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사법농단 재판거래 공식 사죄하라’ ‘정의롭게 판결하라’. 대법원 주변에서 손팻말을 든 이들이 고마웠다. 재판 시작 10여분 만에 김명수 대법원장은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는 주문을 읽었다. 곁에 앉은 임 변호사가 나지막이 “이겼어요”라고 말하자 이씨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만 일찍 판결이 났으면 보고 갔을 텐데….” 넉달 전 세상을 떠난 남편 김규수씨를 대신해 대법정에 온 최정호(85)씨는 김 변호사와 함께 다시 눈물을 흘렸다.
“나까지 네 사람인데 혼자 재판받은 게 많이 아프고 눈물도 나고 기분이 안 좋습니다. 그 사람들이 복이 없는가…. 같이 재판을 못 받은 게 서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씨는 연신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런 이씨의 마음을 작은 정성이 위로했다. 대법원을 나오던 이씨에게 전성현(17)양이 편지와 함께 ‘징용피해 알리기 배지’를 판 성금을 전달했다. “이 사건을 처음 알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 직접 배지를 만들어 팔았어요. 할아버지께 직접 전해주고 싶어 왔어요.” 이씨는 “아이고 예뻐. 참말로 고맙다”고 했다.
재판을 보려고 일본에서 온 ‘일본제철 전 징용공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의 우에다 게이시는 “촛불 혁명으로 사법농단을 밝혀낸 한국의 시민들에게 감사하고, 한 분이라도 살아계셔서 판결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라고 말했다. 일본 언론도 이씨를 밀착 취재하는 등 재판에 큰 관심을 보였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