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신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13년8개월만에 피해자들의 승소 판결이 난 30일 오후 강제동원 문제해결과 대일과거청산을 위한 공동행동 회원들과 피해자들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94)씨가 소감을 말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2013년 11월 양금덕(87)씨는 광주지법 앞에서 ‘만세’를 불렀다. 광주지법 민사12부(재판장 이종광)는 일제강점기 조선여자근로정신대로 끌려간 양씨 등 5명이 강제노역을 시키고도 임금 한 푼 주지 않은 일본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6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012년 5월 대법원이 일본 기업의 강제동원 배상 책임을 인정해줬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기 내 소송을 시작한 지 1년여 만에 들은 희소식이었다. “이제야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양씨는 말했지만, 미쓰비시의 판결 불복으로 2015년 7월 대법원에 다시 올라간 소송은 소식이 없었다.
지금까지 제기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은 모두 15건이다.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선고한 신일철주금(옛 신일본제철) 진용 손해배상 소송 외에도 대법원은 아직 2건의 미쓰비시 징용 사건을 심리 중이다. 이 사건은 지난 달부터 전원합의체에서 심리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광주지법, 서울고법 등 1·2심에 계류된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은 12건이다. 양씨처럼 2012년 5월 일본 기업의 손해배상을 처음으로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보고 힘을 얻어 낸 2차, 3차 소송이다. 신일철주금을 대상으로 한 소송 2건, 미쓰비시 중공업을 대상으로 한 중공업 소송 4건, 후지코시 강재를 대상으로 한 소송 3건 등이 있다. 원고에 이름을 올린 이들만 950여명이 넘는다.
대법원의 신일철주금 징용 사건 재상고심이 5년 넘게 미뤄지면서 하급심 소송도 표류했다. 재판부가 대법원 판결을 기다렸기 때문이다. 그 사이 고령의 피해자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났다.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와 대한변호사협회 등은 대법원의 조속한 판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거나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로 다른 재판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징용 피해자를 대리하는 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15건의 손해배상 소송이 사실관계는 다르지만 법률적인 쟁점은 동일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취지에 따라서 하급심도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일본 기업들이 판결에 불복해 항소나 상고할 가능성이 높아 재판은 더 길어질 수도 있다. 추가 소송이 잇따를 가능성도 있지만 강제동원 피해자 대부분이 고령인만큼 한-일 양국의 외교적 담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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