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한국진보연대 등으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가 지난달 30일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국회가 권순일 대법관을 비롯해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의혹에 연루된 6명의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 절차에 돌입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이 탄핵소추 대상으로 지목한 6명은 권순일 대법관과 이규진·이민걸·김민수·박상언·정다주 법관 등이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법관은 헌법에 따라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이 선고되지 않으면 파면할 수 없다. 법관 신분 보장을 통해 재판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다. 법관은 징계를 받더라도 ‘정직 1년’이 최대치다. 법원은 그동안 사표를 받는 방식으로 ‘문제 법관’을 처리해왔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현직 법관들이 정직 1년을 받은 뒤 다시 법정에 복귀하거나, 조용히 사표를 내고 나가면 국민이 용납할 수 있을까. 최근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 제기되는 법관 탄핵의 쟁점과 과정을 짚어본다. 지금껏 국내에선 법관이 탄핵당한 사례가 한번도 없었다.
■ 탄핵소추안 내용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을 위한 시국회의’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자체 조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사법행정권 남용 또는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진 현직 법관 6명의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했다. 권순일(59·사법연수원 14기) 대법관, 서울고법 이민걸(57·연수원 17기)·이규진(56·연수원 18기) 부장판사, 울산지법 정다주(42·연수원 31기), 창원지법 박상언(41·연수원 32기), 마산지원 김민수(42·연수원 32기) 부장판사가 대상이다. 검찰 기소나 징계가 예상되는 이들이다. 일부는 기소와 징계 모두 면할 가능성도 있다.
시국회의가 공개한 탄핵소추안은 ‘중대한 헌법 위반 사유’ 중심으로 작성됐다. 6명의 법관이 △공무원은 국민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7조) △국민은 헌법과 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하여 법률에 의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27조)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103조)는 헌법을 위반했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이나 증거인멸 혐의 등은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오면 추가로 반영할 예정이다.
■ 법관 탄핵 절차
헌법은 법관이 직무집행 과정에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했을 때 국회가 탄핵소추를 의결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퇴직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은 탄핵 대상이 아니다.
국회 재적의원 3분의 1 이상이 발의하고, 재적의원 과반의 찬성으로 가결된다. 대통령 탄핵소추 기준(재적의원 과반 발의, 3분의 2 이상 찬성)보다 덜 까다롭다.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당사자는 헌법재판소가 탄핵 여부를 결정할 때까지 권한이 정지된다. 권 대법관을 제외한 5명은 이미 재판 업무에서 배제된 상태다.
헌재 탄핵심판에서는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검사 역할을 하는 탄핵소추위원이 된다. 판사 출신인 여상규 법사위원장(자유한국당)은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법원을 감싸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헌법재판은 형사재판과 다르다’는 게 헌재의 입장이지만, 실제 법관 탄핵심판이 진행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 때처럼 검찰 수사기록이 가장 중요한 증거로 활용될 수밖에 없다. 헌법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이 찬성하면 해당 법관은 탄핵된다. 이석태 재판관을 제외한 재판관 8명이 모두 법관 출신이다.
■ 탄핵 기준은?
탄핵이 결정되면 당사자는 결정 즉시 파면된다. 변호사법에 따라 탄핵을 당한 뒤 5년 안에는 변호사가 될 수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일 “선거로 선출돼 민주적 정당성을 가지는 대통령과 달리 법관은 탄핵된다고 해서 법원 업무가 크게 차질을 빚지 않는다. 헌법과 법률 위반의 중대성 판단 기준은 대통령 탄핵보다 낮아야 한다”고 했다. 한 판사는 “징계나 사표는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합당한 처벌로 볼 수 없어 탄핵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있다”고 법원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또 다른 판사는 “실제 재판에 넘겨질 판사는 매우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탄핵이 검토돼야 한다”고 짚었다.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