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청사 전경. 건물 오른쪽 아랫 부분이 법원행정처.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법농단 사태를 촉발한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신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해 대법원장이 제왕적으로 행사해온 사법행정사무 총괄 권한을 대부분 넘기는 것을 뼈대로 하는 법원조직법 개정안이 마련됐다.
대법원 ‘사법발전위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단장 김수정 변호사)은 “수직적·관료적인 기존 사법행정 체계 대신 수평적·민주적 회의체에서 사법행정에 관한 의사결정이 투명하게 이뤄지도록 하겠다”며 이런 내용의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7일 발표했다. 추진단은 지난 달부터 10차례 회의와 외부 전문가 토론회 및 법원 내부 간담회를 거쳐 개정안을 마련해, 지난 2일 대법원장에게 전달하고 6일 사법발전위원회에 보고했다.
개정안은 그동안 대법원장이 독점적으로 행사해온 사법행정사무의 총괄 권한을 새로 만드는 사법행정회의에 넘기도록 하고 있다. 사법행정회의는 법관에 대한 보직인사권을 포함한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고 관계 공무원을 지휘하게 된다. 사법행정회의는 일부 권한을 대법원장이나 법원사무처, 각급 법원장에 위임할 수 있지만, △대법원 예규의 제·개정 △예산요구서·예비금지출안·결산보고서의 검토 △판사 보직인사의 기본원칙 및 인사안 확정 등은 반드시 사법행정회의의 심의·의결을 거쳐야 한다.
대법원장은 헌법상 권한인 법관 임용권, 대법관 제청권, 헌법재판관 지명권 등과 함께 대법관회의 의장과 상고심 재판장으로서의 권한은 그대로 지닌다. 법관 연임명령권, 판사 근무평정권 등은 그대로 대법원장에게 남게 되며, 법관을 제외한 법원공무원의 임명과 보직인사권도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대법원장이 그대로 행사한다.
사법행정회의는 위원장인 대법원장을 비롯해 법관 위원과 비법관 위원 5명씩 모두 11명으로 구성되며,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법관 위원은 대법원장 지명 1명, 전국법원장회의 추천 1명, 전국법관대표회의 추천 3명으로 구성된다.
비법관 위원은 법관·검사·변호사나 대학이나 연구기관의 부교수 이상, 행정관련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했던 사람 중에서 사법행정회의 위원추천위원회가 공모 절차를 거쳐 추천한 사람으로 구성한다. 추천위는 국회의장 추천 3명과 사회적 신망이 있는 사람 3명, 법원 공무원노조 대표 등 모두 11명으로 구성한다.
사법행정회의는 산하에 안건의 연구·검토를 맡을 실무 위원회를 둔다. 또 판사 보직인사 등을 심의할 법관인사운영위원회도 법관 5명으로 따로 구성한다. 법관인사운영위는 대법원장이 위원 2명을 지명하고 전국법관대표회의가 3명을 추천해 균형을 맞췄다. 사법행정회의는 법관 보직인사의 구체적 원칙을 공개해야 한다.
개정안은 사법행정회의 및 산하 위원회에서 위원의 상근을 금지했다. 또 대법관이나 법원장회의 및 전국법관대표회의 구성원이 사법행정회의나 법관인사운영위 위원을 겸임할 수 없도록 했다. 추진단은 “관료화와 사법행정권 남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장치”라고 설명했다.개정안은 이와 함께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를 법정기구로 격상했다. 사법행정권 남용의 통로가 됐던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대신 집행기구로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도록 했다. 장·차관급 정무직인 법원사무처장과 차장은 사법행정회의가 임명한다. 법원행정처가 법관 승진 코스였던 것과 달리, 법원사무처에는 현직 법관이 근무할 수 없도록 했다. 대법관이 처장에 기용되는 일도 더는 없게 된다. 이와 함께 대법원의 재판지원을 맡을 대법원 사무국을 따로 두고, 사법제도 연구 기능도 법원사무처에서 분리하도록 했다.
개정안은 여성의 사법행정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사법행정회의와 위원위원회의 일부는 반드시 여성을 포함하도록 했다.
한편, 실무추진단은 법원조직법 개정 전에라도 대법원 규칙으로 사법행정회의를 발족시켜 당분간 사법행정 자문기구로 활동하도록 할 것을 건의했다.
추진단은 “사법행정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함으로써 사법행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 사법행정권 남용을 방지하자는 것이 개정안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개정안에 대한 최종 의견수렴을 거쳐 국회에 의원입법 형태로 제출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개정안은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국회 사법개혁특위에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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