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이 현행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행정처)의 폐단을 조목조목 강도 높게 지적했다. 14일 서울중앙지법에 제출한 임종헌(59·구속)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서다.
검찰이 법원에 제도 개선을 제안 또는 요구할 권한은 없지만, 약 5개월에 걸친 사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도출한 결론이어서 주목된다. 마침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위원장 박영선)는 15일 행정처 폐지안을 놓고 ‘사법행정조직 개편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한겨레>가 입수한 임 전 차장의 공소장을 보면, 검찰은 행정처가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상명하복’의 업무 풍토가 만연해 있었다고 비판했다. “행정처 출신 법관의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행정처 차장의 대법관 제청이라는 인사 경로가 자리 잡으며, 행정처 소속 법관들은 인사권자인 대법원장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바로 이 인사권 때문에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법원행정처 처장 및 차장의 지시는 무조건 이행해야 하는 상명하복의 업무 풍토가 조성돼 대법원장의 위상과 권력은 막강해진 반면, 개별 법관의 독립은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지적했다.
검찰은 또 행정처가 “대내외적 비판세력을 탄압”했다는 사실도 적시했다. 사법부의 외피를 한 꺼풀 벗겨 보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대법원장 1인 천하’였다는 뜻이다.
공소장에서 검찰은 “대법원장의 막강한 권력 하에 행정처는 일선 법관들이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비롯한 사법행정권에 대하여 논의하는 것조차 부정적으로 인식했다”며 “행정처의 사법행정 방침과 정책을 비판하거나 반대하는 법관들, 대법원의 입장과 배치되는 ‘튀는 판결’을 하는 법관들의 성향과 활동을 사찰하고 징계를 검토했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선거에 개입해 특정 성향 법관이 회장이 못 되도록 하거나, 사법행정위원회에 특정 법관이 위원이 되도록 하는 등 사법행정에 대해 비판하는 법관들의 활동과 목소리를 제약했다”고 짚었다.
검찰이 특정 사건 관련자의 공소장에서 제도나 기구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법원행정처는 일본에서 들여온 매우 낡은 사법관료 시스템으로, 요즘 같은 민주주의 시대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번 수사를 통해 이미 존재하던 행정처 개혁의 필요성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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