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대법원 법원행정처 안내판 앞으로 민원인이 지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차기 헌법재판소장과 관련하여 박한철 소장은 강일원 재판관을 지지하고 있고 최근 평의 과정에서 이와 관련하여 특정 재판관에게 면박을 주었으며, 강일원 재판관은 박한철 소장의 연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안창호 재판관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하더라도 국격이 걸린 문제이므로 절제된 표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9일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보면, 헌법재판소에 파견됐던 최희준(46·사법연수원 28기) 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2015년 3월 당시 이규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서 ‘법원과 관련된 주요 사건들에 대해 헌법재판소 내부 평의 등 정보가 확인되면 바로 전달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최 부장판사는 2015년 7월부터 2017년 3월까지 총 322건의 헌재 내부 자료나 동향을 수집해 이규진 상임위원이나 당시 문성호 행정처 정책실 심의관에게 보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이나 법원이 민감하게 생각하는 사건, 차기 헌재소장 등에 대한 헌재소장, 헌법재판관과 연구관들에 대한 정보나 자료들이었다.
특히 최 부장판사는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대통령 탄핵심판 관련 보고를 행정처에 41차례 했다. 이규진 상임위원이 2016년 11월 “탄핵 관련한 헌재 동향과 자료를 잘 확인하고, 절차 관련 자료도 받아두라”는 임 전 차장의 지시에 따라 최희준 부장판사에게 보고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중에는 안창호 재판관뿐 아니라 “전원일치면 좋은데 반대의견이 나올까 봐 걱정”이라는 선임연구관의 발언, 탄핵 인용 여부나 선고 기일 등 내부 정보보고뿐 아니라 대리인들이 낸 준비서면과 증인신문사항, ‘고영태 녹취록’ 같은 탄핵심판 사건의 기록 파일까지 포함됐다. 당시 작성된 ‘하야 가능성 검토’, ‘대통령 하야 정국이 사법부에 미칠 영향’ 등의 문건을 보면 행정처는 탄핵심판에 깊은 관심을 보이며 “정치적 기본권, 정치적 자유와 관련된 이슈에서는 과감하게 진보적 판단을 내놓아야 한다” 같은 정치적 계산에 몰두했다.
또 최 부장판사는 행정처에 ‘재판 개입’ 의혹을 받는 징용 사건과 관련된 한일협정 관련 헌법소원 등 대법원 판결과 연결된 헌재 사건의 재판관 평의 내용을 보고하고 헌법연구관 내부보고서도 넘겼다. 헌법소원 사건뿐 아니라 헌재법 개정안 등 헌재 현안에 관한 재판관들의 입장도 보고 대상이었다. 최 부장판사는 2016년 9월 ‘연구관 부장 및 팀장회의’에서 “나는 연임할 생각이 없다. 연임 제의가 오더라도 받아들이지 않겠다. 공개적으로 해명하면 인사권자인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므로 외부에 밝힐 일은 아니다”는 박한철 당시 소장의 발언도 빼놓지 않고 보고했다.
행정처가 마치 ‘국가정보원’처럼 판사를 통해 헌재의 내부 정보를 빼돌린 배경에는 ‘최고 법원’ 위상을 둘러싼 경쟁심이 있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공소장에 “행정처 관계자들은 2013년 11월 법무부가 통합진보당 정당 해산 심판을 청구한 것을 계기로 헌재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집중되고 헌재의 위상이 강화됨으로써 향후 법원 재판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을 우려했다. 피고인을 비롯한 양승태, 박병대 등 고위 간부들은 대법원의 최고 사법기관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헌재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이런 행정처의 태도는 2015년 10월 ‘헌재 관련 비상적 대처 방안(대외비)’ 문건에서도 확인된다. 당시 행정처 사법정책실은 헌재를 압박하려 ‘급이 낮은’ 법관을 헌법재판관으로 추천하거나, 헌법재판관을 대법관으로 임명제청하는 방안 등을 검토했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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