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0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 주범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이 열린 가운데, 임 전 차장측이 ‘검찰 공소장에 공정성이 결여됐다’며 공소 기각 판단을 내려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10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 등을 받는 임 전 차장에 대한 첫 번째 공판준비기일이 열렸다. 공판준비절차에서는 본격적인 심리를 시작하기 전에 재판부와 검사, 변호사가 주요 쟁점과 재판 진행 방식 등을 정한다. 정식 공판이 아니어서 피고인이 출석할 의무는 없다. 임 전 차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임 전 차장측 변호인은 이날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반했다. 공소기각 판결이 내려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소장 소제목이나 범행 배경, 목적 등을 설명한 내용에 검찰의 판단과 의견이 나타나 재판부에 예단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때 공소장 하나만을 법원에 내야 하고 법원에 선입견을 줄 수 있는 서류 등을 제출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공소기각 주장 과정에서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을 예시로 들기도 했다. 이 전 대통령측도 1심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공소장 일본주의를 위배했다’며 공소 기각을 주장한 바 있다. 임 전 차장 변호인은 “이 전 대통령 관련 공판 절차에서도 공소장 일본주의가 문제 됐다. 해당 판결을 보면 법원에서 충분히 검토할만한 부분이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은 임 전 차장의 범행이 수년에 걸쳐 은밀히 이뤄진 만큼, 공소사실을 특정하기 위해서 범행 배경, 목적 등을 불가피하게 기재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임 전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으로 재판의 공정성이 침해됐다는 국민적 의혹이 제기돼 재판이 시작됐다. 재판의 공정성을 우선 가치로 삼아야 한다면서도 재판 심리에 들어가기도 전에 공소를 기각하라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날 임 전 차장측은 검찰이 서류증거의 열람·복사를 제한한 점도 문제 삼았다. 재판 관련 서류증거 등이 20여만쪽에 달하는데 검찰이 열람·복사를 허가한 증거는 5만쪽(40%)정도여서 피고인이 방어권을 온전히 행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형사 재판에서 피고인과 변호인은 사건 기록을 살펴보고 복사, 검토한 뒤 혐의 인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임 전 차장측은 검찰이 사건 기록 열람·복사를 제한하고 있는 만큼 공소사실에 대한 입장을 밝힐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반면 검찰은 “공범에 해당하는 상급자와 하급자, 임 전 차장의 여죄를 수사하고 있다. 상호 간 진술이 달라 증거를 모두 공개할 경우 수사 정보 유출,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맞섰다. 이어 “피고인의 방어권을 위한다면, 열람·복사 허용된 기록만이라도 먼저 살펴 재판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양쪽 주장 공방을 살펴본 재판부는 다음 공판준비기일까지 임 전 차장측이 모든 기록을 받아볼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검찰측에 당부했다.
검찰과 변호인측이 날 선 공방을 벌이면서 이날 재판은 1시간 만에 종료됐다. 두 번째 공판준비기일은 19일 오후 두 시에 열린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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