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법관 표적집단 심층좌담]
‘사법농단’ 재판거래 아니라는 주장에
“공부 잘한 모범생들의 인정 경쟁
인사 눈치 보며 판결 신경 쓰지만
사법신뢰 잃자 조직 지키려 방어”
‘사법농단’ 재판거래 아니라는 주장에
“공부 잘한 모범생들의 인정 경쟁
인사 눈치 보며 판결 신경 쓰지만
사법신뢰 잃자 조직 지키려 방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공부 잘하는 사람 모아놓은 연수원
그중 가장 열공한 사람들이 판사
중산층 이상 집안서 굴곡없이 자라
소수자 고려해야 하는데 시야 좁아 한국 법조계 초기 형성 과정을 그린 <법률가들>을 펴낸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불멸의 신성가족>에서 판사들을 ‘신성가족’이라고 불렀다. “법원 ‘신성가족’의 일원이 되려면 사법시험이라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해야 할 뿐만 아니라 판사직 진입이라는 더 좁은 관문도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가족은 서로 닮았다. 연수원1은 “이렇게 균질한 조직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최소한 중산층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인생의 굴곡 없이 자란 모범생이라, 하라는 대로 공부를 해서 여기까지 왔죠. 법원의 공공성이 인정되는 이유 중 하나가 사회적인 결정에서 다수뿐만 아니라 소수자의 이익도 고려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균질한 사람들의 시야는 뻔한 거예요.” 법관의 ‘공적 소명’을 위협하는 또 다른 요소는 업무량이다. <사법연감>을 보면 지난해 접수된 사건만 1806만9526건이다. 판사 2903명이 이를 처리했다. 실제 연수원2는 일에 치여 판사를 그만뒀다. “일은 좋은데 너무 많고 힘드니까 인생을 소모하는 느낌이었어요. 아침 7시에 출근해서 밤 9시 반에 퇴근하고 주말에도 일해요. 팽팽한 활시위를 당긴 상태에서 계속 생활하는 거예요. 아이들과 놀아줄 수도 없고 동물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내 인생을 좀 살자고 해서 나오게 됐죠.” 연수원1은 그런 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너무 더운데 에어컨을 안 틀어줘서(법원도 공공기관 냉난방 제한 대상이다) 도저히 사무실에 나갈 수 없는 여름 주말에나 간혹 쉬었던 것 같아요.” 1주일 동안 법복을 입는 건 잠시다. 법복을 벗으면 매일 기록을 읽고 판결문을 써야 하는 ‘사무직’이 된다. 지난달 주말 야근을 마치고 퇴근해 갑자기 숨진 현직 판사도 ‘과로사’했다. 소송 당사자들에게 때로는 ‘운명’이 걸린 재판이 판사에겐 처리해야 할 ‘업무’로 다가온다. 변호사에서 판사로, 다시 변호사로 돌아간 연수원3도 그랬다. “법원에 있으면 소모되는 느낌, 피로감을 느끼는 게 있어요. 사건 처리하는 데 급급해져서 매너리즘에 빠져요. 사건 하나하나에 철학을 담을 겨를도 없고, 철학을 키울 틈도 없어요.” 사건 처리율과 장기 미제 사건 비율은 법관 인사평가에도 반영된다. 판사 수는 늘지 않는데 사건 처리 독촉을 받다 보니 판사들은 ‘재판하는 공무원’이 되어간다. “판사들은 인사에 너무 약해…
‘화이트리스트’에 못 들까 걱정”
공적 소명 위협하는 요소들
판사가 해야 할 일 너무 많고 힘들어
재판은 단지 급한 ‘업무’로 다가와
사법 관료화 된 판사들은 인사 눈치
윗선에서 싫어하는 판결은 주저
법원 자체, 개혁 불가능”
사법농단을 대하는 태도
대법관 등 고위법관들 여전히
‘사법신뢰는 만들어져야 한다’ 믿어
판사 상당수 ‘사법농단은 침소봉대’
우리가 해결할 테니 간섭말라 생각 ■ 법관끼리만 믿어주는 판결 연수원3은 판사들이 이번 상황을 ‘집안일’로 선 긋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원 분위기를 보면 ‘우리 스스로 해결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거 같아요. 그런데 사법제도는 사법부가 아니라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우리 조직’ ‘우리 사법부’ ‘우리가 잘 해결할 수 있어’라고 하는데, 재판받는 사람들의 생각도 같이 들어가면서 해결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간섭이라고 못마땅해하면 안 되죠.” 연수원1은 ‘외부’에 대한 적대감의 연원을 ‘판사다움’에서 찾았다. “판사들은 재판하면 언제나 한쪽 당사자로부터는 욕을 먹어요. 그래서 이런 외부 목소리에 흔들리면 안 된다는 훈련을 받죠. 게다가 외부는 주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정쟁이나 벌이는 국회가 과연 삼권분립과 재판 독립을 지켜줄까, 오히려 국회가 재판에 직접 개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불신이 크죠.” 처음부터 법원 밖에 있었던 연수원4는 이를 “잘못한 사람이 벌줄 사람의 자격을 따지는 태도”라고 꼬집었다. “지금 국민이 법원에 신뢰를 보내지 않는 것은 잘못 그 자체가 아니라 잘못이 드러난 이후의 태도 때문”이라는 것이다. “잘못을 덮거나 감춰서 추락하는 거죠. 사법부 신뢰 회복은 간단해요. 잘못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자세면 되는 거예요. 지금은 어때요? ‘우리도 잘못했다. 그런데 너는 깨끗하냐? 우리보다 더한 검찰이 우리를 수사해? 우리보다 덜하지 않은 국회가 개입해?’ 이런 식이죠.” 연수원4는 지난 10월 법원행정처의 전관예우 실태조사 연구용역 결과를 언급하며 “판사들의 이중잣대”를 지적했다. 국민(41.9%), 검사(42.9%), 변호사(75.8%) 모두 “전관예우 현상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답했다. 반면 조사에 참여한 판사 중 23.2%만이 전관예우를 인정했다. 갑절 가까운 54.2%는 전관예우는 없다고 했다. 또 판사들의 56.1%는 수사기관에선 결과를 뒤집는 전관예우가 작동한다고 보면서도, 정작 형사재판에서는 “절차 이외에 결론을 바꾸는 영향은 없다”(45%), “절차든 결론이든 아무런 영향이 없다”(41.7%)고 답했다. 현직 판사인 연수원1은 이런 이중잣대를 “법원 판결은 당연히 믿어야 한다”는 판사들의 태도와 연결지어 설명했다. “판사는 신이 아니잖아요. 재판 결과를 판사끼리 믿어주는 건 아무 소용 없잖아요. 동료 판사가 동료 판사의 재판을 믿는 게 무슨 의미인가요. 재판 당사자, 국민이 믿을 수 있어야 하잖아요.” 답답했는지 연수원1의 목소리가 계속 높아졌다. “재판에 대한 믿음을 국민에게 강요할 수는 없으니, 판사들이 정말 양심껏 재판했다고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사법부가 제공해줘야 해요. 그게 바로 공정한 재판 절차죠. 그래서 재판 절차와 결론이 분리될 수 없는 겁니다.” 그는 ‘재판 개입 자체가 없었다’는 주장은 그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법원 내부에선 ‘재판 과정에 행정처나 고위 법관의 영향력이 있었더라도 재판 결론만 바뀌지 않았으면 되는 거 아니냐’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받아들여진다고 한다. 연수원1은 “재판을 해보면 재판 절차와 결론은 분리될 수 없어요. 재판 절차가 망가졌어도 결론을 잘 내리면 재판 거래는 존재하지 않는 건가요? 판사의 뇌를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결론까지 바꿨는지 알 수가 없는데도요?” 연수원2는 법원의 이런 태도가 ‘신영철 재판 개입’ 때도 똑같았다고 떠올렸다. 2008년 신영철 전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있을 때 이명박 정부 정책에 반대한 촛불집회 사건 형사재판을 특정 재판부에 몰아주거나 양형에 개입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그때도 일부 판사들은 ‘그 정도를 재판 개입이나 압박으로 느낀 판사가 이상하다’고 했어요. ‘그런 걸 거부할 강단도 없이 어떻게 판사를 하느냐’는 거예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래요. 행정처의 ‘조언’을 ‘개입’으로 느끼는 판사가 이상하다는 거죠.” 사법개혁 물꼬 틀 방안은
재판거래 없었다고 한목소리 내면
국민이 믿어줄 거라는 생각은 코미디
법관 탄핵 없으면 신뢰회복 어려워
개혁은 대법원장이 나서야 하는데… ■ 법관=기득권…자체 개혁 어려워 ‘나를 믿으라’는 선언은 평판사부터 대법관까지 공통됐다. 지난 6월 대법관 13명 전원(대법원장 제외)은 “재판 거래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연수원4는 “(문제가 된 재판이 끝나고) 한참 나중에 임명된 대법관들까지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한목소리를 냈어요. 입장문을 발표하면 국민이 믿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코미디죠”라고 했다. “비극이 여기 있는 거 같아요. 국민은 너무 화가 나지만 당장 이런 법원에 재판은 또 받아야 한다는 거죠.” ‘비극’을 끝내는 방법의 하나로 연수원1은 ‘법관 탄핵’을 제시했다. “만약 신영철 대법관 사태 때 법원이 단호하게 대법관을 징계했다면, 이후 재판 개입은 없었을 거예요. 저도 동료 법관들이 불쌍해요. 하지만 탄핵이라는 헌법적 판단이 이뤄지지 않으면 10년, 20년 뒤에 어떤 식으로 오늘의 상황을 받아들이게 될까요?” 연수원4는 “사법개혁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건 대법원장인데, 요즘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자신을 평화로운 ‘요순시대’의 대법원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연수원2도 “법원 자체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연수원1도 회의적이었다. “지금 김명수 대법원장을 엄청난 권한을 행사하던 전임 이용훈·양승태 대법원장과 비교할 수 없어요.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촛불 같은 입지죠. 대법원장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말을 한 순간 법원 내 30~40%는 등을 돌렸다고 봐요. 기득권을 해체하는 일이라 기득권이 돌아선 거죠. 대법원장이 한발 내디디면 세발 물러서는 반발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심층좌담이 끝나고 엿새 뒤 법원은 두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좌담 참석자들에게 추가 의견을 구했다. “범죄가 아니라고 위헌 행위가 합헌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이 사안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한 첫 단추는 법관 탄핵이다.”(연수원1) “영장이 기각될 거라 예상했다. 이로 인해 탄핵이 더 중요해졌다.”(연수원2) “기각을 예상했다. 전직이지만 대법관 구속영장을 발부하면 법원의 존재가치, 자존심을 스스로 허무는 느낌이라 쉽지 않았을 것이다.”(연수원3) 연수원4는 말했다. “그 누구의 영장보다 법원의 부담과 고민이 컸을 것이다. 이해한다. 다만 누가 그 고민의 결과를 수긍하겠느냐.” 김민경 기자 salmat@hani.co.kr ※이번 FGD를 공동기획한 ‘공공의창’은 14개 여론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관이 모인 비영리 공공조사 네트워크다. ‘한국 사회를 투명하게 반영할 수 있는 조사, 정부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는 조사’에 뜻을 모으고 2016년 출범했다. 매달 한차례씩 공익성 높은 공공조사를 실시해 발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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