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수사는 ‘적폐청산’이라는 국정 기조에 맞춰 선택과 집중이 이뤄졌다. 검찰은 서울중앙지검을 ‘적폐청산 본산’으로 삼아 대규모 수사팀을 상시 가동하는 비상체제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집권 3년차를 맞은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하향세를 보이자, 그간 사정 칼바람을 피해 숨죽이던 기득권 세력이 ‘정치 보복’ ‘수사 피로감’을 주장하며 반발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검찰이 돌파구 찾기에 고심하는 가운데 주요 적폐청산 수사는 해를 넘겨 내년 상반기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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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지난 6월 막을 올린 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구속(10월27일)으로 급물살을 타는 듯했던 사법농단 수사는, 지난 7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며 숨고르기에 들어간 상태다. “두 사람의 지시를 받았다”는 전·현직 판사들의 진술이 있는데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들은 두 전직 대법관의 “나는 모르는 일”이라는 진술을 더 신뢰했다. 박 전 대법관은 미운털이 박힌 판사를 찍어내기 위해 가짜 정신질환 소견까지 적어낸 문건을 결재까지 했는데도 소용없었다. 이 때문에 ‘세밑 소환’이 예상됐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도 내년 1월에 가능할 전망이다.
‘양승태 키드’ 등 법원 내 기득권들은 ‘제 식구 감싸기’가 불러온 수사 장기화 국면을 아전인수 격으로 활용하고 있다. ‘재판 개입은 없었는데도 검찰이 사법부를 죽이고 있다’는 것이다. 검찰은 내년 1월 안에 ‘승부수’를 띄울 것으로 보인다. 수사팀은 법원의 깐깐한 기준을 넘어서기 위해 한층 진전된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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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바이오
삼성 관련 검찰 수사는 ‘기득권 세력 전체’와의 대결이기도 하다. 금융당국으로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회계사기’라는 판단을 받은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 사건은 최근 검찰 문턱을 넘기 전부터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수사 공정성’을 문제 삼는 보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17년 초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수사한 특검팀은 삼성바이오 관련 뇌물 혐의를 공소장에 넣었는데, 이를 경영권 승계를 위한 수단으로 판단했던 당시 수사팀원이 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과 한동훈 3차장검사다. 이들이 ‘삼성=유죄’ 예단을 갖고 수사할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앞서 금융당국 조사 과정에서 삼성이 회계법인들과 고의적인 분식회계를 논의한 내부문건 등 구체적 물증이 확인된 상태다. 검찰 관계자는 “근거도 없이 수사팀을 음해하는 소문을 전해 듣고 있다. 이 수사를 맡을 때부터 이미 예상했던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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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보수정권이 쌓은 적폐의 상당 부분은 국가기관을 동원한 여론조작과 민간인 사찰이다. 검찰은 지난해 8월 국가정보원을 시작으로 올해 국군기무사령부, 경찰 등으로 수사를 확대했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티에프(TF)를 꾸려 유가족 등 민간인 사찰을 지시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지난 7일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수사는 급제동이 걸렸다. 지난 28일 검찰은 이 전 사령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하고, 김아무개 전 기무사 참모장(예비역 소장)에 대해서만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세력은 “죄 없는 참군인이 죽었다”며 이 전 사령관의 죽음을 정치적 반격의 지렛대로 삼아 공세로 전환했다. 반면 이 전 사령관 시절 참모들은 검찰 수사에서 “민간인 사찰을 만류해도 사령관이 강행했다”고 진술한 상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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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폐청산 계속돼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28~29일 전국 성인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신뢰 수준 95%,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 9.6%) 결과를 보면, 적폐청산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비교적 높은 편이다. ‘여전히 적폐가 많기 때문에 권력형·생활형 적폐청산 활동을 계속해야 한다’(43.3%)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정치보복에 불과하므로 그만해야 한다’(30.4%), ‘권력형 적폐청산은 어느 정도 이뤄졌기 때문에 생활형 적폐청산에 집중해야 한다’(20.8%)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사법농단에 관여한 법관 탄핵 찬반을 묻는 질문에선 찬성(67.8%) 의견이 반대(23.2%) 응답에 견줘 3배 가까이 많았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30일 “정치적 중립 의무가 있는 공무원들이 특정 정치세력이나 권력자에게 줄을 대고 권한을 남용해온 관행을 단절시키는 것이 적폐청산 수사의 목적이다. 시간에 쫓기듯 넘어갈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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