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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제왕적 대법원장’ 검찰청에 세운 ‘일제 강제노역 사건’ 전말

등록 2019-01-07 17:00수정 2019-01-07 21:00

검찰 “강제노역 재판 지연, 양승태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1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때 가서 보겠다”고 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1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때 가서 보겠다”고 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오는 11일 오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서울중앙지검 청사 앞에 그어진 포토라인에 선다. 역대 대법원장 중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했던 그를 검찰청 15층 조사실에 앉게 만든 것은, 현재 한-일 사이 최대 현안으로 떠오른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사건 손해배상 판결이다.

‘제왕적 대법원장’이었던 그는 대법원장 집무실에서 소송 당사자인 전범기업 쪽 변호인을 직접 만나는 등 거칠 것이 없었다. 검찰 핵심 관계자는 7일 “강제노역 재판 지연은 처음부터 끝까지 양 전 대법원장이 주도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검찰 수사를 보면, 2013년 대법원에서 일찌감치 정리됐어야 할 재판을 5년 넘게 끄는 과정에 ‘양승태’라는 이름은 빠지지 않는다.

2013년 7~8월 대법원에 다시 올라온 두 건의 강제노역 사건(재상고심)은 심리불속행(대법관들이 심리하지 않고 바로 상고를 기각하는 것)으로 간단하게 끝날 사건이었다. 불과 1년여 전인 2012년 5월 대법원은 같은 사건에 대해 ‘일본 기업이 피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외교통상부를 통해 ‘대법원 판결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1년여만에 재판 결과를 바꿀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박근혜 정부’ 자체가 ‘이유’였다. 2013년 9~10월 청와대는 외교부를 통해 ‘국제적 파장을 감안해 선고를 지연시키고,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겨 신중히 판단해 달라’는 요청을 법원행정처에 수차례 전달했다고 한다. 검찰은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을 주도한 당사자라는 점 등을 의식해 판결 결과를 번복하려 한 것”으로 판단했다. 일본은 박정희 정부와 맺은 청구권협정으로 피해자 배상이 모두 끝났다고 주장한다.

그즈음 행정처는 청와대 바람대로 “심리불속행을 할 수 있는 기간(4개월)을 넘긴 후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냈고, 실제로 대법원 담당 재판부는 2015년이 될 때까지 아무런 심리도 하지 않고 시간만 보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도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 재상고심 주심이었던 김용덕 전 대법관은 최근 검찰 조사에서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강제노역 판결이 원고승소로 확정되면 국제법적 문제가 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2014년 6월부터 주심이었던 김 전 대법관은 지난해 1월 퇴임 때까지 결론을 내지 않았다.

4개월을 넘겨 심리불속행을 할 수 없게 된 2013년 12월, 차한성 법원행정처장(대법관)은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 공관에서 청와대와 외교부의 입장을 두루 들은 뒤 “왜 이런 이야기를 2012년 판결 때는 안 했느냐”고 했다고 한다. 검찰은 차 전 대법관으로부터 당시 비공개 회동 내용을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한다.

2014년 10월에는 박병대 행정처장(대법관)이 다시 김기춘 비서실장 등을 만나 대책을 논의했다. 검찰은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서 당시 박 전 대법관 등이 ‘재상고 사건 결론을 바꾸려면 전원합의체 판결로만 가능하다’며 전원합의체 회부 유도 방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후 대법원은 2015년 1월 기존 판결 번복을 원하는 외교부가 재상고심에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대법원규칙을 개정해줬다. 소송 당사자도 아닌 외교부의 의견을 재판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준 것이다. 대법원규칙은 양 전 대법원장이 참여하는 대법관회의에서 이뤄졌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국민 정서’를 고려해 선뜻 의견서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2015년 12월 ‘불가역적’이라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체결되자 여론은 더욱 나빠졌다. 머뭇거리는 외교부를 닦아세운 것은 ‘양승태 대법원’이었다고 한다. 2016년 4~5월께 행정처는 ‘대법원장 임기(2017년 9월)를 감안해 더 이상 절차를 늦추면 곤란하다’는 의견을 외교부에 전달했다. 특히 그해 9월 임 전 차장은 조태열 외교부 2차관을 만나 ‘양 전 대법원장으로부터 전원합의체 회부 계획을 전달받았다’며 재판 진행 계획을 전했다. ‘외교부가 늦어도 11월 초까지 의견서를 보내주면 최대한 전원합의체 회부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런 내용을 외교부 압수수색 등을 통해 확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도 밑에서 올라오는 보고만 받고 있지는 않았다.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상호 변호사를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여러 차례 만난 사실이 검찰의 김앤장 압수수색을 통해 확인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로 넘길지 여부를 결정하는 ‘전합 회부 소위‘ 위원장이다. 김앤장이 작성한 내부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한 변호사에게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고 확인해줬다”는 내용이 담겼다고 한다.

이후 대법원은 2016년 10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전원합의체 회부를 위한 검토를 본격화했다. 그러나 국정농단 사건과 대통령 탄핵으로 3년여에 걸친 ‘재판 개입’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흐지부지됐다. 강제노역 사건 재상고심은 대법원장이 교체되고 지난해 10월에야 ‘원고 승로’로 마무리됐다. 그 사이 강제노역 피해자 대다수가 세상을 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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