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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양승태, 거짓으로 밝혀진 ‘놀이터 기자회견'

등록 2019-01-10 15:33수정 2019-01-11 07:40

11일 오전 9시30분 검찰 출석…7개월만에 모습 드러내
일제 강제동원 재판 개입·블랙리스트 의혹 등 해명 관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판사 뒷조사와 재판 거래 의혹 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 1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판사 뒷조사와 재판 거래 의혹 등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검찰에서 수사를 한답니까?”

지난해 6월1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 수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취재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이렇게 되물었다. 대법원 특별조사단 조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해서도 “내가 가야 됩니까”라고 반문했다. 자신은 조사 대상이 될 수도 없고, 감히 수사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었다. 7개월여 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양 전 대법원장 집 근처에서 이뤄진 이 ‘놀이터 기자회견’을 두고 제왕적 대법원장의 특권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로부터 225일째인 11일 오전 9시30분, 양 전 대법원장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5층 조사실에 앉는다. 피의자 신분이다.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처음으로 검찰청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은 부끄러운 사법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놀이터 기자회견에서 단언했던 것과 달리, 이후 검찰 수사를 통해 그가 재판 개입과 판사 블랙리스트 실행에 깊숙이 관여한 사실이 드러났다.

“대법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부당하게 재판에 간섭하고 관여한 바가 결코 없다. 재판은 정말 순수하고 신성한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놀이터 기자회견에서 재판 개입·거래 의혹을 단호하게 부인했다. “명백히 선을 긋고 넘어가야 한다” “양보할 수 없는 한계점”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는 그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들이 전범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 재판이 특히 그렇다. 양 전 대법원장은 ‘수족’처럼 부리던 법원행정처를 통해 청와대와 외교부가 요구한 재판 지연 및 판결 번복 방법을 궁리했다. 전범기업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대법원장이 직접 만나는 ‘있을 수 없는’ 특혜까지 제공했다. 이 사건 주심 대법관에게도 판결 번복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의견을 전달하기도 했다. 대법원과 김앤장 쪽 문건, 관련 법관들의 진술이 모두 ‘양승태’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한 판사는 “놀이터 기자회견 당시는 일제 강제동원 재판을 둘러싼 의혹이 본격화하기 전이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더는 부인하기 어려워 보인다”고 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정책에 반대한 사람이나 특정한 성향을 나타냈다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준 적이 전혀 없다. 그런 것으로 불이익을 주는 것은 단호히 잘못이라 생각한다.”

양 전 대법원장은 7개월 전 기자회견에서 상고법원 등 자신의 사법정책에 반대하거나, 개혁 성향을 나타내는 판사들을 사찰하고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일축했다. 그러나 검찰이 법원행정처에서 확보한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이 직접 ‘자필 서명’을 통해 특정 판사에게 인사 불이익을 주도록 한 정황이 뚜렷하다.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이 대표적이다. 이 문건은 양 전 대법원장이 재임하던 2012~2017년, 연초 법관 인사를 앞두고 해마다 작성됐다고 한다. 특히 검찰이 하드카피(종이문서) 형태로 압수한 2014~2017년 작성 문건에는 ‘대법관 구성 다양화’ 소신을 밝힌 판사 등이 인사 조치 검토 대상에 올랐다. 법원행정처가 ‘인사 우선 순위 배제’ ‘일반 인사 원칙 적용’ 방안을 함께 제시하면 양 전 대법원장이 브이(V) 표시로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지난해 말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을 살펴봐도, 양 전 대법원장이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소모임 등 특정 법관모임을 와해하려 한 정황이 드러난다. 대법원과 달리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 긴급조치 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판사에 대해 ‘이런 식으로 들이받는 판결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며 강한 불만을 나타낸 뒤 징계 방안을 살펴보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또 다른 판사는 “양 전 대법원장 본인은 ‘재판할 때 법과 양심에 따라 해야 한다, 추호도 정무적 판단은 하면 안 된다’고 말해왔다. 그런 그가 일선 판사들의 재판에 개입하고, 자신의 방침을 따르지 않으면 불이익을 줬다. 놀이터 기자회견은 그 자체로 위선”이라고 꼬집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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