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6월1일 경기도 성남에 있는 자신의 집 근처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그는 검찰 조사에 응할 것인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때 가서 보겠다”고 했다. 성남/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오는 11일, 전직 대법원장으로 사상 처음 검찰 조사를 받는 양승태(71·사법연수원 2기) 전 대법원장의 ‘긴 하루’가 예정돼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오전 8시께에는 경기도 성남시 시흥동 동산마을에 있는 자택을 나서야 한다. 자택에서 서울 서초구 법조타운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거리다. 양 전 대법원장이 자택이 아닌 제3의 장소에서 머물다 출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앞서 검찰이 출석을 통보한 시간은 오전 9시30분이지만, 양 전 대법원장 쪽은 자신이 1년여 전까지 몸담았고 또 호령했던 대법원의 정문 앞에서 오전 9시에 입장을 밝히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겠다는 양 전 대법원장의 의지에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도 10일 성명을 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 내 적폐세력을 결집시켜 자신들의 재판에 개입하려는 마지막 도발을 저지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여기에 재직 시절 외압 의혹이 불거진 재판 관련 ‘피해자’들의 기습시위도 예상된다. 서울 서초경찰서는 이날 “‘사법농단시국회의’(100여명 규모)와 ‘애국문화협회’(30여명 규모)가 두 건의 관련 집회를 신고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대법원 앞 입장문’ 발표를 강행할 예정이다. 검찰 조사를 앞둔 전직 수장이 ‘불청객’ 처지로 대법원을 찾아 담장에 기대 입장문을 읽는 모습은 그 자체로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될 것으로 보인다.
그 뒤 양 전 대법원장은 차량을 타고 8차선 도로 동쪽에 건너 놓인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자리를 옮겨 미리 준비된 포토라인에 서게 된다. 그는 검찰 청사에서는 별도 입장을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수백 대의 카메라가 양 전 대법원장 얼굴의 작은 일그러짐까지 포착하려 장사진을 이룰 예정이다. 답변에 상관없이 ‘질문 세례’도 준비돼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검찰 출석을 하루 앞둔 10일 오후 서울중앙지검에서 기자들이 포토라인을 설치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조사에 앞서 한동훈(46·27기) 3차장 검사와 차 한잔을 하게 된다. 이날 서울중앙지검 청사는 외부인 출입을 통제하고, 미리 비표를 받은 기자들만 출입한 수 있다. 청사 보안 담당자들은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동선을 재차, 삼차 점검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청사 꼭대기인 15층에서 조사를 받는다.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도 이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출입문을 등진 채 창가 쪽으로 난 책상을 두고 검사들과 마주 앉게 된다.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59·23기)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최정숙(52) 변호사가 배석한다. 조사는 단성한·박주성·조상원(각 32기) 등 특별수사부 부부장검사들이 맡는다.
검찰은 밤샘조사를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다만 조사할 내용이 방대해 최소 두 차례 이상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지난 11월 이번 사법농단 사태로 구속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수시기록만 20만 쪽에 달한다고 한다. 검찰 관계자는 “2차 조사부터는 안전 등을 고려해 비공개로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사가 자정 전에 끝나더라도 양 전 대법원장 쪽의 조서 검토 시간 등을 고려하면, 그는 자정이 넘어야 청사 밖으로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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