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달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법원을 빠져나오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 각급 법원장들로부터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소속 법관들을 정리한 문건을 ‘인사비밀’ 봉투에 담아 걷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게 모인 문건은 ‘판사 블랙리스트’의 기초 자료가 됐다.
12일 <한겨레>가 입수한 검찰 공소장을 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각급 법원장들에게 법관들의 통상적인 근무평정표 외에 별도로 소속 법관들의 사법행정에 대한 비판 행적 등을 ‘인사관리 상황보고’로 작성하도록 했다. 법원장들은 이를 매년 대법원장 신년인사를 위해 서울 서초동 대법원을 방문했을 때 ‘인비(인사비밀의 줄임말)’라고 표시한 봉투에 담아 법원행정처장에게 제출했다. 이렇게 걷은 ‘인비’는 2013년 정기인사에서부터 2017년까지 ‘물의야기 법관’ 분류 기초자료로 사용됐다.
공소장에는 양승태 대법원이 ‘물의야기 법관 문건’을 체계적으로 작성하고 관리한 정황도 드러났다. 검찰의 공소사실을 보면, 양승태 대법원은 윤리감사관실로부터 받은 ‘물의야기 법관 현황’ 보고서와 각급 법원으로부터 공식·비공식적으로 받은 소속 판사들에 대한 특이동향 자료, 법원행정처에서 열린 회의에서 거론된 문제법관 등을 종합해 ‘물의야기 법관 문건’을 만들어 불이익 인사조처를 검토했다.
이렇게 종합된 내용들은 각급 법원 인사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각급법원 법관 참고사항’으로 정리돼 법원장들에게 전달됐다. ‘각급법원 법관 참고사항’ 문건에는 사법행정에 비판적이거나 부담을 준 판사, 성향 및 과거 평정내용 등 부정적인 인사정보가 담겨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물의야기 법관으로 분류되면, 정기인사 과정에서 인사대상자가 아님에도 본인의 희망에 반하는 전보 인사 명령을 받거나, 대법원 재판연구관 및 해외 대상자 선발과 같은 선발성 인사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검찰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에게 성추행·음주운전 등 비위를 저지른 법관들보다 가혹한 인사불이익 조처를 주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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