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구속기소)의 공소장에는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법조·외교 전관’들이 팀을 꾸려 일제 강제노역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 재상고심 사건에서 ‘맹활약’한 정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7일 공소장을 보면, 김앤장은 검찰 출신으로 주미대사를 지낸 현홍주 고문(2017년 사망), 주일대사를 지낸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등이 청와대와 외교부를, 판사 출신인 한상호·조귀장·최건호 변호사 등이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를 담당하는 ‘징용사건 대응팀’을 꾸렸다. 조·최 변호사는 판사 시절 일본 연수를 다녀온 ‘일본통’이다.
이 팀의 수장이었던 현홍주 전 고문은 2013년 1월 유명환 고문과 함께 일본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고문인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일본대사와 윤병세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위원(이후 외교부 장관)과의 면담 일정을 조율했다. 극우 인사인 무토 전 대사는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책에서 “박근혜는 북조선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고작 백만명의 데모에 의해 탄핵 결의로 내몰렸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윤병세 전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2012년 (강제노역) 대법원 판결을 변경해 청구기각으로 종결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당시 김앤장 고문이었던 윤 전 장관은 이런 취지의 의견을 청와대에 보고했다.
2017년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책을 쓴 무토 마사토시. <한겨레> 자료사진
유명환 고문도 당시 외교부 조태열 2차관과 김인철 국제법률국장,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등을 만나 일본 전범기업 입장을 전달했다. 특히 2015년 한일포럼 땐 박근혜 대통령을 직접 만나 “2012년 대법원 판결을 방치해선 안 된다.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했다고 한다.
검찰은 의정부지원장을 지낸 한상호 변호사의 역할도 ‘변론’보다는 ‘로비’에 가까웠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앤장에서 민사 총괄 업무를 맡는 것으로 알려진 그는, 2013~15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4차례 이상 만나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결론을 뒤집어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현홍주 팀’과 ‘한상호 팀’이 시너지를 내기도 했다. 2015년 11월 당시 현 고문이 “외교부가 소극적”이라고 말하자,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법원행정처가 외교부를 압박하기 시작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김앤장의 이런 활동이 변호사 업무의 연장선이어서 처벌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우리나라에는 로펌이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편법 로비’를 해도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