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보석 심문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지목돼 구속기소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해달라며 낸 보석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재판장 박남천)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으로 기소된 양 전 원장의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고 5일 밝혔다.
앞서 법원은 지난 1월24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영장을 발부하며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피의자의 지위 및 중요 관련자들과의 관계 등에 비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된 지 불과 27일 만인 지난달 19일 법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법원은 지난달 26일 보석 심문을 했고, 7일 만인 이날 기각 결정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0자 원고지 81장 분량으로 적어낸 보석청구서에서 도주나 증거인멸 우려가 없기 때문에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양 전 원장은 보석심문기일에 직접 출석해 “검찰은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며 검찰 수사를 강도 높게 비난하기도 했다. 또 “20여만 페이지에 달하는 증거와 증거 서류가 장벽처럼 가로막고 있다”며 피고인의 방어권을 확보하기 위해 보석 청구가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업무용 컴퓨터 디가우징(영구 삭제)을 지시하고, 블랙박스의 에스디(SD)카드를 의도적으로 폐기했다.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이번 기각 결정은 재판부가 “양 전 원장이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을 경우 공범과 말을 맞추거나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높다”는 검찰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지난 보석심문에서 “양 전 원장이 범행사실을 모두 부인하고 자신의 잘못을 하급자에게 전가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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