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5일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의 공소장에 옛 국민의당 박선숙·김수민 의원(현 바른미래당 의원) 관련 ‘재판 청탁’을 적시하며, 이를 법원행정처가 ‘처리’한 혐의를 적용했다. 앞서 검찰이 지난해 11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기소할 때 홍일표·유동수 의원이, 올 1월 임 전 차장 추가기소 때 서영교 의원과 전병헌·이군현·노철래 전 의원 등이 재판을 매개로 ‘양승태 사법부’와 거래를 한 정황이 드러난 바 있다. 법원과 국회 사이에 있을 수 없는 ‘뒷거래’가 다시 한번 드러난 것으로, 유사한 로비가 더 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날 드러난 ‘거래’의 핵심은 박선숙·김수민 두 의원의 재판 결과와 관련해 이 전 실장이 ㄱ 국회의원에게 부탁을 받고 담당 판사의 심증을 파악한 뒤 이를 다시 ㄱ 의원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박·김 두 의원 외에 구속재판 중인 또 다른 당직자의 보석 가능성도 타진했고, “보석에 부정적”이라는 회신을 받기도 했다. 검찰은 이 전 실장이 이런 부적절한 뒷거래을 한 범행 동기에 대해 “사법부 추진 정책에 도움을 받을 목적으로”라고 적시했다. 다만 검찰은 이 전 실장에게 심증을 알아봐달라고 부탁한 ㄱ 의원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청탁이 있었고 재판부 심증이 ㄱ 의원에게 전달된 사실은 확인했지만, 이 전 실장이 함구하는 탓에 그가 누구인지 또 이런 거래의 윗선이 누구인지는 확인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ㄱ 국회의원이 누구인지 확인하지 못해 박선숙·김수민 의원은 조사할 수 없었다”면서도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지금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기소한 것이지 아직 수사가 끝난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행정처가 일선 재판부에 심증을 묻는다는 것 자체가 재판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판사들의 인사나 국외연수, 파견 등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행정처 고위 간부가 직접 나섰다면 압박감이 더 컸을 수 있다고 한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물어보는 행위 자체로 재판부에 압력이 될 수 있다. 피고인 중 어느 쪽이 행정처 라인으로 연결된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심증을 알아낸 것 자체가 재판의 공정을 해치게 된다”고 지적했다.
이 전 실장의 요청을 받고 담당 판사의 심증을 파악해 이메일로 보고한 기획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주요 로비 통로였을 가능성이 크다. 한 판사는 “보통 행정처를 거쳤거나 까다로운 지시도 묵묵히 잘 따르는 판사들이 주로 (기획법관에) 배치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서울서부지법 기획법관 역시 “피고인 쪽 변명이 완전히 터무니없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등의 주심 판사의 심증을 구체적으로 보고했다고 한다. 재판부의 심증을 전달받았다면 전달받은 쪽은 재판 전략을 짜거나 대외적으로 정치적 대응책을 모색하기가 한층 쉬워질 수밖에 없다. 상대인 검찰이 재판부의 속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재판을 치른 것과는 대조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검찰 관계자는 “향후 법원과 국회의 ‘재판 거래’나 ‘재판 청탁’에 대한 추가 수사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는 법원 자체에 대한 수사에 집중하느라 의혹이 제기된 서영교·홍일표 의원 등에 대한 조사를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미 ‘양승태 사법부’가 국회와 상당히 유착돼 있음을 보여주는 자체 생산 문건도 다수가 공개된 바 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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