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5일 사법농단에 연루된 전·현직 고위법관 10명을 재판에 넘기면서 법원을 대상으로 한 수사는 사실상 마무리했다. 사법농단 사태로 재판을 받는 전·현직 법관은 앞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포함해 14명으로 늘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이날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공무상비밀누설 등의 혐의로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양형실장), 신광렬 임성근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이태종 전 서울서부지법원장, 심상철 전 서울고등법원장, 성창호·조의연 전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 방창현 전 전주지법 부장판사 등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또 수사과정에서 확인된 현직 법관 66명에 대한 비위 사실을 증거자료와 함께 대법원에 통보했다.
검찰 관계자는 “단순히 죄가 된다고 기소범위를 정하면 기소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질 수 있어 기소를 한정했다”고 밝혔다. 너무 많아 차마 다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범죄혐의 중대성, 가담 정도, 실제 수행한 역할, 지시에 따른 수동적 이행인지 적극적 가담인지 여부, 진상규명에 대한 기여 정도 등 현실적인 공소유지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소된 이민걸 전 실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들의 지위확인 소송에 개입하고 국제인권법연구회 등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판사들 모임에 대한 와해를 시도하는 데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이규진 전 양형실장은 헌법재판소 내부 기밀을 불법수집하고, 옛 통진당 관련 재판 개입, 법관사찰 등 혐의를 받는다. 임 전 수석부장판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재판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들 체포치상 혐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를, 신 전 수석부장판사는 2016년 ‘정운호 게이트’ 당시 판사들 상대 수사를 저지하기 위해 영장전담 재판부를 통해 검찰 수사상황을 빼내고 영장심사 가이드라인을 내려보낸 혐의를 받는다.
지난달 김경수 경남지사를 법정구속한 성 부장판사 등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법관 2명은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로 함께 재판에 넘겨졌다. 성 부장판사는 신 전 수석부장판사로부터 수사가 예상되는 법관 가족 31명의 명단을 받아 영장심사에 활용했다고 한다.
이 전 서부지법원장은 서울서부지법 집행관들 비리 사건과 관련해 다른 법원으로 수사가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법원행정처에 수사기밀을 보고한 혐의, 심 전 서울고법원장은 법원행정처 요청에 따라 옛 통진당 의원들의 행정소송 항소심이 특정 재판부에서 심리되도록 ‘배당조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에게는 청와대 요청을 받고 박 전 대통령 ‘비선 의료진’ 김영재 원장의 특허소송 관련 자료를 청와대 쪽으로 누설한 혐의, 지난해 초 법원을 퇴직하면서 재판연구관 보고서 등 내부기밀을 무단으로 들고 나간 혐의 등이 적용됐다. 방 부장판사에게는 법원행정처의 요구를 받고 자신이 담당하던 옛 통진당 의원들 사건의 선고 결과와 판결 이유를 누설한 혐의가 적용됐다.
김양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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