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기로 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결심이 있었다고 증인은 생각했습니까?”(검찰)
“전원합의체 재판장인 대법원장이 그렇(게 결심하)지 않겠냐 추측했습니다.”(한상호 김앤장 변호사)
일본 전범기업들의 강제징용 배상 책임을 묻는 소송에서 일본 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한상호 변호사가 7일 법정에서 검찰과 나눈 대화다. 검찰은 한 변호사가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을 대리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수차례 독대하고 그 과정에서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의 결론을 바꾸기 위해 사건을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하는 데 두 사람이 교감한 것으로 보는데, 관련 진술이 공개된 것이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재판장 박남천) 심리로 열린 양 전 대법원장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한 변호사의 증언을 종합하면,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을 법원 안팎에서 여러차례 만났다.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2012년 대법원 판결이 있은 뒤인 2013년 3월 양 전 대법원장은 한 변호사와 만나 “대법원 판결 주심인 김능환 주심이 귀띔도 안 해줬다” “강제징용 사건은 선례와 어긋나고 한-일 관계에도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한 변호사는 “그렇게 중요한 사안 같으면 전합에서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의문에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감을 표시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밝혔다. 한국 대법원장과 일본 기업을 대리하는 국내 변호사가 만나 재상고 사건을 뒤집기 위한 전합 회부를 논의한 것이다. 한 변호사는 양 전 대법원장의 연수원 4년 후배로 법원행정처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강제징용 사건을 전합에 회부하기 위한 김앤장과 법원행정처 간의 유착은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서 공개된 한 변호사의 자필 메모와 김앤장 내부 문건에 따르면, 2015년 5월 한 변호사는 임종헌 기조실장(법원행정처 차장)으로부터 정부기관 의견 청취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법원에 제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후 양 전 대법원장과 만나 “외교부에 의견서를 요청하기로 했다” “외교부가 소극적이라 걱정”이라고 전했고, “(양 전 대법원장이) 공감을 표시한 기억이 있다”고 한 변호사는 설명했다.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에 근거해 한-일 관계 악화를 우려한 외교부 의견서가 재판부에 제출되는 과정에 김앤장과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물밑에서 교감해온 것이다. 2015년 1월 도입된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는 재판 이해관계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다.
한 변호사는 이날 직무 윤리상 의뢰인이 맡긴 사건의 내용은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수차례 증언을 거부하기도 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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