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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돼지열병은 정말 북한에서 전파된 걸까요?

등록 2019-09-27 19:32수정 2019-09-28 11:47

[토요판] 친절한 기자들
국내 다섯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진된 지난 25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해당 농장 입구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국내 다섯번째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확진된 지난 25일 인천 강화군 송해면 해당 농장 입구에 외부인 출입을 금지하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연합뉴스
지난 17일 아침 7시19분 문자 한통이 아직 침대에 누워 있던 저를 벌떡 일으켜 세웠습니다. ‘경기 파주 돼지농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서둘러 관련 브리핑이 예정된 농림축산식품부로 달려가면서 ‘드디어 지옥문이 열렸구나’ 하는 매우 구체적인 공포감이 밀려왔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바이러스(ASFV)가 얼마나 ‘끈질기고 치명적’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안녕하세요, 농식품부와 환경부, 세종 지역을 맡은 전국2팀 최예린입니다. 지난 17일 경기 파주시의 한 돼지농장에서 우리나라 첫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양성)’ 판정이 나온 뒤 27일 오후 경기 파주, 연천, 김포, 인천 강화까지 모두 9곳의 돼지농장이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발생 지역 대부분이 비무장지대(DMZ) 접경 지역이다 보니 ‘북한에서 바이러스가 넘어온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가질 만합니다.

실제 북한은 지난 5월30일 세계동물보건기구(OIE)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다고 보고했습니다. 북한이 이 기구에 제출한 자료 내용을 보면, 5월23일 자강도 우시군 소재 북상협동농장에서 의심 신고가 접수됐고 이틀 뒤 아프리카돼지열병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지난해 8월 아시아에서 최초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곳이 중국 랴오닝성인데요. 자강도 우시군은 압록강을 두고 랴오닝성과 맞닿아 있는 접경 지역입니다.

하지만 그 뒤 북한 쪽 대응은 잘 알려지지 않았고, ‘이미 개성까지 북한 전역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다 퍼졌을 것’이란 추측만 나도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비무장지대 근처의 파주, 연천에서부터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잇따라 발생하고 나니 그저 추측이 아닌 높은 ‘가능성’으로 북한 쪽 현황을 살펴봐야 하는 상황이 된 거죠. 북한 양돈 농가에 정통하다고 알려진 김준영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지난 18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북한엔 소독약이나 생석회가 충분치 않고 감염된 돼지는 그대로 땅에 묻어버리며 끝”이라며 “만약 이렇게 묻힌 돼지 사체를 누군가 파내 고기로 유통했거나, 매나 독수리 같은 맹금류가 쪼아 먹고 주변으로 퍼트렸다면 이미 북한 전역에 바이러스가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한 답은 국가정보원이 내놓았는데요. 국정원 관계자가 지난 24일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북한 평안북도의 돼지가 전멸했다. (북한에) 고기가 있는 집이 없다는 불평이 나올 정도”라며 “첫 발병 신고 뒤 (북한의) 방역이 잘 안 된 것 같다. 북한 전역에 돼지열병이 상당히 확산됐다는 징후가 있다”고 보고한 겁니다.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지난해 이미 ‘예언(?)’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지난해 8월 중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직후 건국대 수의대에서 열린 ‘긴급 전문가 간담회’에서 류영수 건국대 교수와 위르겐 리히트 미국 캔자스주립대 교수는 ‘중국 랴오닝성은 북한과 접해 있어 한반도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습니다. 특히 야생 멧돼지가 한반도 전역에 고루 분포하는 점을 지적하며 휴전선 인근 야생 멧돼지를 통한 국내 전파 가능성을 시사했는데요. 2000년대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한 동유럽 나라들도 ‘감염된 야생 멧돼지의 이동’을 바이러스 전파 경로로 꼽았다고 합니다. 이 간담회에서 진행된 설문조사에서 국내 수의사의 83%는 ‘우리나라에도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병할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

국내 발생 뒤에도 여러 전문가는 ‘야생 멧돼지를 통한 북한으로부터의 유입’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은 4∼21일의 잠복기가 있고, 바이러스가 죽은 돼지의 내부 조직과 피에서도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 멧돼지 사체가 북한에서 강을 타고 휴전선 아래로 내려와 주변 환경을 오염시켰을 가능성과, 군사분계선 안에 있던 야생 멧돼지가 감염돼 다른 야생동물이나 곤충과 접촉한 뒤 철책 밖으로 전파됐을 가능성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농식품부는 이 모든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방역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성급한 예단은 금물이지만, 가능성 높은 ‘바이러스 유입 경로’ 중 하나가 북한이라는 건 맞습니다.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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