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부산 중구 씨제이(CJ) 대한통운 부산지사 앞에서 전국택배연대노조 부산지부가 노조 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겨레 자료 사진
노동자처럼 일하면서도 자영업자로 분류돼 온 택배기사가 노동조합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첫 법원 판단이 나왔다. 정부에 이어 법원이 택배기사들의 ‘노조할 권리’를 인정한 것이어서, 앞으로 택배기사들이 단체행동을 통해 권익향상을 꾀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5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상규)는 씨제이(CJ)대한통운 대리점주들이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시정을 명령한 재심 결정을 취소하라”며 낸 행정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전국택배연대노조(택배노조)가 노동조합법(노조법)에서 정한 노동조합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면서, 씨제이대한통운 대리점주들이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소득 출처와 지휘·감독 관계, 임금의 대가성 등을 검토해 “다소 이질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택배기사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 결론적으로 택배노조는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인 택배기사가 주체가 돼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 조직한 단체가 맞다”고 판단했다.
택배노조는 2017년 11월 “택배기사는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고용노동부 판단에 따라 정부의 노조 설립신고증을 받았다. 택배노조 소속 조합원들은 지난해 1월 위·수탁 계약을 맺은 대리점과 씨제이에 ‘근로계약서 작성’ 등을 주장하며 단체교섭을 요구했지만, 씨제이와 대리점들은 응하지 않았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단체교섭에 나서라고 했지만, 씨제이와 대리점들은 이를 거부하고 그해 1월 행정소송을 냈다. 이번 판결은 씨제이대한통운 대리점주 20여명이 낸 행정소송이 하나의 재판으로 병합된 것으로, 씨제이가 낸 행정소송은 서울행정법원 다른 재판부에 계류 중이다.
이번 판결로 전국 3000여개의 대리점을 가진 씨제이대한통운은 택배노조가 요구하는 단체 교섭을 거부할 명분이 사라졌다. 박정환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정책국장은 “대한통운은 그동안 교섭을 회피하면서 시간끌기용으로 소송을 냈다”며 “점점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가 인정되는 가운데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고용노동부는 그동안 대법원이 노조법상 노동자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재택위탁 집배원, 학습지 교사 등 일부 직종에 한해 노동권을 보장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 일반의 노조할 권리는 장기 과제로 남겨뒀다. 택배노조의 경우 전속성(하나의 회사나 그 회사의 사장이 지정하는 회사에 근무한다는 의미) 등의 기준에 부합한다고 보고 노조 설립필증을 인가했다. 이번 판결 이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조 인정 범위가 더 확대될 지도 지켜볼 대목이다.
택배노조는 이날 선고 후 기자회견을 열어 “사법부가 시대의 흐름과 택배 노동자의 절절한 염원을 받아들였다“며 “씨제이는 1심 결과에 따라 교섭에 응할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으니, 이제 즉각 교섭에 나와 택배 노동자들의 권익을 개선하는데 함께 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고한솔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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