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 간사가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국군간호사관학교 성희롱 단톡방 사건 은폐 관련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국군 간호장교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인 국군간호사관학교의 남생도들이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단톡방)에서 여생도와 여성 훈육관을 성희롱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학교는 이런 사실을 인지하고도 가해 남생도 1명만 퇴교 조처해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인권센터는 25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 교육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군사관학교 남생도들이 단톡방에서 여성 동기 및 선배 생도, 훈육관을 대상으로 성희롱성 발언을 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학교는 여생도들의 신고를 통해 이런 사실을 알았음에도 성범죄를 저지른 남생도들을 묵인·방조했다”고 주장했다.
군인권센터의 설명을 종합하면, 국군간호사관학교 2~4학년 남생도 22명 가운데 절반인 11명가량은 자신들이 속한 3개의 단톡방에서 여생도 4명와 여훈육관 1명에 대한 성희롱을 일삼았다.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단톡방 갈무리 화면을 보면, “XX 지렸다”, “훈육관님 X리둥절 개꿀잼”, “(실습 나가서) XX빠는 거 아니냐?” 등과 같은 수위 높은 성희롱 발언이 여러 차례 등장한다. 일부 여생도들의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두고 “XX 정신 좀 차려라”, “페미에 취한다”고 비꼬는 발언도 나온다. 이런 식으로 남생도들이 동기 생도나 훈육관을 성희롱하거나 비하하면 같은 단톡방에 있는 또 다른 남생도들의 웃음과 동조가 잇따랐다.
국군사관학교 남생도들이 단톡방에서 오고 간 여성 동기 및 선배 생도, 훈육관을 대상 성희롱성 발언들. 박종식 기자
학교는 성희롱 사실을 인지했음에도 가해 생도 1명만 퇴교 조처하고 나머지 생도들에겐 모두 근신 4~7주의 처분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여생도들의 신고를 받은 학교는 훈육위원회를 열고 가해자로 지목된 생도 11명의 징계 수위를 정했는데, 이 가운데 3명만 퇴교를 심의하는 단계인 교육위원회에 회부했고, 이들 가운데 서아무개 생도만 퇴교 처분을 받았다. 나머지 2명은 근신 7주, 교육위에 회부되지 않은 생도 8명은 근신 4주의 징계를 받았다. 이마저도 국군간호사관학교 생도생활예규에 성희롱과 성폭력 가해 행위를 징계할 수 있는 항목 자체가 없는 탓에 가해 생도들의 발언을 성희롱이 아닌 ‘생도답지 않은 언행 및 태도’로 분류해 징계했다.
아울러 학교는 여생도들의 신고를 묵인하려 들거나 피해 생도들이 2차 가해에 노출되도록 방치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단톡방 성희롱 사실을 알게 된 일부 여생도가 훈육관을 찾아가 신고하자 송아무개 훈육관은 “동기를 고발해 단합성을 저해하려는 너희가 괘씸하다”고 다그쳤다고 한다. 성희롱 사건이 인지된 뒤에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 조처는 이뤄지지 않았고, 담당 훈육관들은 학년별 정신훈화 시간에 “동기 간에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의 교육을 했다. 그러는 동안 피해 생도들은 “유난이다”, “괜한 일을 벌여서 그렇다”는 식의 2차 가해에 노출돼야 했다.
군인권센터는 이번 사건 가해 생도들을 상대로 고소 및 고발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간사는 “이번에 확보된 단톡방 캡쳐본과 피해자의 진술에 따라 형법상 모욕죄,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상 명예훼손, 군형법상 상관 모욕죄 등을 범한 가해 생도들에 대해 법리검토 이후 고소 및 고발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방 간사는 이어 “범죄자를 두둔하고 피해자들을 2차 피해 속에 방치한 국군간호사관학교 교장 권명옥 준장 이하 관련 훈육진을 즉각 보직에서 해임하고 조사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