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0월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뇌물공여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에 출석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최근 유죄 판결을 받은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관련 내용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보고용 문건에 포함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삼성전자 및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사건의 1심 판결문을 보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은 2011년 3월9일 이 회장에게 삼성의 노조 와해 전략을 보고하기 위해 ‘복수노조 시행에 따른 대응방안’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작성했다. 문건에는 “전 임직원 노사교육과 현장 조직관리를 강화해 원천적으로 노조 설립 가능성을 차단하겠다”며 전 사업장의 복수노조 대응실태를 점검하고 2011년 2월 초 사장단 세미나를 열어 노사 문제에 각 회사 사장들이 책임지고 챙기도록 독려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만약 소수 문제인력에 의해 노조가 생기더라도 조기에 노조를 와해시키도록 하고, 여의치 않으면 시간을 끌면서 상대 노조를 고사화시키거나 친사 노조를 설립해 무력화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덧붙였다. 회사의 불법 노동행위를 이 회장 보고용 문건에 포함한 것이다.
이 문건은 삼성 내부에서 ‘에이(A)보고’라고 불렸다. 최지성 전 미전실 실장(부회장)과 정금용 전 삼성전자 경영지원실 인사팀장(부사장·현 삼성물산 리조트 부문 대표이사)는 검찰 조사에서 “에이보고는 ‘이건희 회장 보고용 문건’을 뜻한다”고 진술했다. 삼성그룹 미전실을 필두로 한 그룹 차원의 노조 와해 전략이 이건희 회장까지 보고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회장 등은 올 1월 검찰의 노조 와해 사건 기소 때 기소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재판부도 이 문건이 실제 이 회장에게 보고됐는지 판단하지 않았다. 서울중앙지검은 해당 문건 보고 라인에 있는 관계자를 수사했지만, 이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까지 문건이 보고된 정황을 찾지 못했다는 입장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미전실 관계자에게 단계별로 보고가 올라가는데, 그 보고가 어느 선에서 끊겼다. 실제 문건이 어디까지 보고됐는지 관계자 진술이나 다른 증거를 종합해도 입증이 쉽지 않아 이 회장 등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사건 초반 검찰의 소극적인 태도는 아쉬운 대목이다. 2013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에스(S)그룹 노사전략 문건을 공개한 뒤, 이 회장과 최지성 실장 등 10여명이 부당 노동행위로 고소·고발당했다. 당시 이 회장이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 전이어서 조사가 가능했지만, 검찰은 2015년 1월 “문건 자체를 삼성그룹이 작성했다는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했다. 지난해 2월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삼성 노조 와해 전략이 담긴 문건 6천여건을 확보해 재수사가 시작됐고 삼성전자 및 서비스 관계자 등 32명이 기소됐지만 총수 일가는 제외됐다. 결국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그룹 차원의 조직적 노조 와해에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물음표’로 남았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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