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018년 10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지목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년 4개월 만에 보석으로 석방됐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는 “보석을 허가할 상당한 이유가 있다”며 임 전 차장에 대한 보석을 허가했다. 재판부는 “법원이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때로부터 약 10개월이 경과했고, 그동안 피고인은 격리돼 있어 참고인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일부 참고인들은 퇴직해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와 비교하면 피고인이 참고인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감소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일부 참고인이 공범(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서 증언을 이미 마쳤다”고 설명했다. 임 전 차장이 참고인과 접촉해 그 증언을 오염시키거나 관련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적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보석에 다섯 가지 제한 조건을 달았다. 임 전 차장은 법원이 지정하는 일시, 장소에 출석하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제출해야 한다. 또 법원이 지정하는 장소로 주거지가 제한되며, 주거지가 변경되거나 출국할 경우 미리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재판과 관계된 사람들과 전화나 이메일, 휴대전화 문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 어떤 방법으로도 직·간접적으로 연락해서는 안 된다. 보증금은 3억원으로, 보석보증보험증권으로 대체할 수 있다.
법원 결정으로 임 전 차장은 이날 오후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다. 2018년 10월27일 구속 된 지 503일 만이다. 검찰 관계자는 “보험증권 제출이 확인되는 대로 서울구치소에 석방 지휘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 전 차장은 지난 10일 보석 심문 기일에서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는 만큼 불구속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증거 대부분이 전·현직 판사의 진술이기 때문에, 보석될 경우 관련자와 접촉해 그 진술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 전 차장 쪽은 “검찰이 제출한 증거의 신빙성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거꾸로 증거 내용을 토대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공범이나 관련자들 진술을 번복하거나 회유할 의사가 없다”고 반박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공범이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는 점 또한 형평성 차원에서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차장의 구속 기간은 임 전 차장이 낸 법관 기피신청 탓에 길어졌다. 임 전 차장은 지난해 5월 추가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 “재판장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우려가 있다”며 법관 기피신청을 냈다. 기피신청을 내면 진행 중인 재판이 중단되는데, 중단 기간은 구속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임 전 차장의 기피신청은 항고와 재항고를 거쳐 지난 1월30일 대법원에 의해 결국 기각됐다. 기피신청 판단에만 7개월이 소요됐다. 임 전 차장의 구속 기간은 오는 7월 만료 예정이었다.
임 전 차장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재상고 사건, 전교조 법외노조 처분 사건, 가토 다쓰야 일본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 사건 등의 재판에 개입하거나 법원행정처 방침에 비판적인 판사들을 뒷조사하고 판사들의 연구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를 와해하려 한 혐의 등을 받는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과 공모해 재판을 청와대와의 거래 수단으로 삼거나 법원 안팎의 비판 세력을 탄압하려고 했다고 본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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