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영천이 그 정신병자 새끼가 절 때려서 학폭 담당 선생님께 신고했어요!”
공부도 운동도 잘해서 친구들 사이에 인기 많은 규태(가명)가 울그락불그락 화난 얼굴로 교무실에 들어섰다. 영천이(가명)는 1학기 중반에 전학을 온 아이로 몸집이 작고 말수가 적었다. 쉬는 시간에는 주로 사촌이 있는 다른 반 교실에서 보내느라 친한 반 친구가 없었다. 규태는 영문도 모르고 책으로 머리를 맞았다며 영천이가 정신이상자라고 했다. 예전 학교에서도 감정 조절을 못 해 사고를 치고 전학 왔다는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친구들 앞에서 공개 사과하지 않으면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강제전학을 요구하겠다며 흥분했다. 규태를 보내고 영천이를 불렀다.
“규태가 틈만 나면 저를 조롱하고 괴롭혔어요. 아까도 지우개를 잘라 엎드려 있는 제 머리에 날렸어요. 노려보며 싫은 내색을 하니까 실실 웃으며 계속했어요.” 영천이는 규태가 실수한 척하며 필통을 자기한테 날리고 책상을 ‘툭’ 치고 지나가며 ‘쏘리’ 하고 여러차례 비웃기도 했다고 했다. “얼마 전에 ‘그러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했는데도 오늘 또 그런 거예요.” 나는 선생님이나 학생부의 도움을 구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저만 친구한테 예민한 사람 될 게 뻔하잖아요. 제 편에서 말해줄 친구도 없고요.” “아, 그런 마음이었구나. 너 참 외롭고 절박했겠다.” 순간 영천이의 눈이 붉어지며 소나기 같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먼저 괴롭힌 규태의 사과를 받기 전에 제가 먼저 사과할 순 없어요.”
다시 규태를 불러 영천이를 놀렸는지 확인했다. “전학 왔으니 빨리 친해지려고 장난을 좀 걸었죠. 얼마 전에 정색하며 ‘그만하라’고 말하길래 그 뒤로는 안 했어요. 오늘은 다른 친구한테 던진 건데 잘못해서 영천이 머리로 간 거예요.” 규태는 진심으로 억울해했다.
나는 두 사람이 만나 이야기 나눠볼 것을 권했다. 규태는 자신 있게 ‘좋다’고 했지만 영천이는 망설였다. 다시 규태의 비열함에 농락당할까 봐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선생님이라는 안전지대가 있으니 염려하지 말라고 안심시키고 자리를 만들었다. 두 아이는 상대의 잘못을 낱낱이 지적하며 학폭위를 열어달라고 팽팽히 맞섰다.
학폭위가 열리면 두 사람 다 각각 책임지게 될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더니 아이들은 좀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학폭 담당 교사에게 사정을 전했다. 학폭 매뉴얼에 따르면 바로 사안 접수를 하고 보고해야 한다며 난색을 보였지만 담임인 나를 믿고 기다려보겠다고 했다.
며칠 뒤 영천이가 먼저 교무실로 찾아왔다. “선생님, 제가 더 큰 벌을 받게 될지라도 학폭으로 다뤄주세요. 규태의 잘못이 10%에 불과할지라도 반드시 잘못을 묻고 싶어요.” 단호하고 힘찼다. 규태는 왜 영천이가 그렇게 불리한 결정을 하는지 궁금하다며 한번 더 대화해보고 싶다고 했다.
다 함께 모인 자리에서 영천이는 그동안 겪은 일을 하나하나 떠올렸고 나는 그때 어떤 마음이 들었는지도 물었다. 영천이가 당시의 마음을 기억해 표현할 때마다 규태는 점점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짜증을 내면 다른 애들이 ‘성질 있네’라며 웃는 바람에 더 비참했어요. 짧은 쉬는 시간이 마치 지옥 같았어요”라고 영천이가 말하자 규태는 왈칵 울음을 터뜨렸다. 자신의 행동이 그렇게까지 영천이를 힘들게 했을 줄은 몰랐다며 절절한 마음으로 사과했다. 결국 세 사람 모두 눈물을 흘리며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었다. 이후로 영천이는 쉬는 시간에도 다른 교실로 가지 않고 우리 반 아이들과 어울렸다.
존엄한 존재와 존재가 건강하게 공존하는 데 있어 갈등은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해마다 각급 학교에서 감당하기 힘들 만큼 많은 학폭 사안이 매뉴얼에 맞춰 기계적으로 처리되고 있다.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물음으로써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곤 하는 것을 보며 ‘혹시 신속하게 작동하는 학폭 매뉴얼이 때로는 건강한 갈등을 통해 성장해야 할 아이들 마음의 성장판을 강제로 닫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하게 된다.
이 시간에도 서로의 마음을 알면 차마 그럴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사회의 만연한 배제와 혐오 또한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지 않는 데서 온 것은 아닐까’도 잇대어 생각해본다.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