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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독립성 훼손된 재판, 선고 후 수정된 판결문

등록 2020-04-05 00:03수정 2020-04-05 09:16

[토요판] 법정에 선 양승태 사법부
19. ‘전주지법 공보사태’의 전말

헌재와 위상 경쟁, 양승태 대법원
정당 해산 결정된 통진당 의원들
법원에 “의원 유지” 잇단 소송전
대법, ‘헌재 견제’ 지렛대로 활용

법원행정처가 담당 재판부에 영향력
‘의원직 유지 판단, 법원 권한’ 판결
재판장은 배석들과 합의 없이 선고
행정처 개입 노출 막으려 일사불란
▶ 이른바 ‘사법농단 사태’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기소돼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대법관 이상의 고위 법관들이 이렇게 무더기로 법정에 서는 것은 사법부 역사상 초유의 일입니다. 2019년 3월11일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첫 재판을 시작으로, 진실을 밝히고 유무죄를 따지는 긴 여정이 시작됐습니다. 법정 르포의 방식으로 ‘사법농단 재판’을 중계해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2018년 8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 앞에서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출석하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직위 유지 관련 사건에서 법원 담당 재판부에 영향을 끼친 의혹을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8년 8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1층 현관 앞에서 사법농단 사건에 연루돼 검찰에 출석하던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전 상임위원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직위 유지 관련 사건에서 법원 담당 재판부에 영향을 끼친 의혹을 받고 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2015년 11월25일 전주지법 행정2부(재판장 방창현)는 옛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지방의원인 이현숙 전 전북도의회 의원이 전북도 등을 상대로 낸 퇴직 처분 취소 소송에서 이 의원 손을 들어줘 의원직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렸다. 2014년 12월 헌법재판소가 통진당 해산을 결정하며 소속 국회의원 직위 상실을 결정했으나 지방의원은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방의원직 상실을 결정해 이 의원은 직을 잃었다. 이날 판결 직후 전주지법 공보판사는 전주지법을 취재하는 기자단에 기사 작성 참고 자료로 판결문 초고와 함께 법원 내부 보고서를 전자우편으로 보냈다.

‘통진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결과보고’란 제목의 첨부 문건에선 전주지법 판결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했다. “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한 판단 권한이 법원에 있다고 선언한 부분은 권력분립 원칙의 진정한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헌재의 월권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적절하다. (중략) 법원행정처 공보관실–전주지법 간 공보 스탠스 공유 완료.” 헌재를 깎아내리는 ‘헌재의 월권’, 정무적 판단이 가미된 ‘공보 스탠스’ 같은 표현은 통상 법원 보도자료에서는 보기 드문 튀는 용어다.

법원행정처는 그날 저녁 해명 자료를 내놨다. “(문건 내용은) 법원행정처 내부에 보고된 바 없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개인 의견에 불과하다.”

이 사건은 이른바 ‘전주지법 공보사태’라고 불린다. 검찰은 이런 일이 빚어진 배경에 양승태 대법원이 있다고 본다. 헌재 출범 이후 대법원과 헌재는 최고 사법기관 위상을 놓고 경쟁해왔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의 법원행정처가 헌재와의 영역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헌재를 끊임없이 사찰·견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에 통진당 행정소송 사건은 좋은 지렛대였다.

검찰 공소장을 종합하면,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 이후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직 상실 여부 판단 권한이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음을 판결로 선언하려고 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병대 법원행정처장,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등 법원행정처 지휘부는 통진당 행정소송 대응 티에프팀(TFT)을 꾸린 뒤 헌재 대응 업무를 총괄하던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에게 관련 사건을 맡고 있던 전주지법 재판부 심리에 개입하도록 했다.

4년이 흐른 지금 재판 당사자(방창현)와 재판 개입 실무자(이규진), 재판 개입 지시자(양승태·박병대·고영한·임종헌) 모두 사법농단 의혹으로 피고인석에 섰다.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으로 소속 정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이 박탈되자, 소속 의원의 행정소송이 잇따랐다. 법원행정처는 의원직 상실 여부 판단 권한이 헌재가 아닌 법원에 있다는 점을 일선 재판부가 명확히 해주길 바랐다. 이규진 상임위원은 전주지법 담당 재판부 방창현 재판장과 사법연수원 동기(28기)인 심경 사법지원총괄심의관(현 변호사)을 통해 전주지법 재판부와 접촉을 시도했다. 심 심의관은 이 상임위원 지시를 받고 2015년 9월 방창현 재판장과 5~10분간 통화했다. 검찰은 당시 심 심의관이 전주지법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고 특정한 판단 방향을 전달하려고 전화한 것으로 파악했다. 법원행정처는 기각이든 인용이든 본안 판단으로 나아가 법원에 판단 권한이 있다는 걸 보여주길 원했다. 다음은 심 심의관 증언(2020년 1월9일 이규진·방창현 판사 재판 증인신문)이다.

“행정처에서 일선 법원과 연락하는 경우, 해당 업무 담당자가 연락하죠. 증인은 담당자가 아닌데 재판부 재판장과는 친분 있는 사이였죠. 이런 경우가 있습니까?”(방창현 판사 변호인)

“저로서는 법원행정처에 있는 동안 처음 있는 일이었습니다.”(심경 전 심의관)

“이규진 상임위원이 증인에게 지시한 내용이 정확히 무엇이었나요.”

“지금 기억나는 건 ‘서울행정법원에서 각하 판결이 있었지만 (전주지법은) 본안 판단하는 것이 적절한 것 같다. 그런 법리 검토 의견을 전달해줄 수 있겠나. 내부 티에프(TF) 검토 자료가 있으니 필요하면 도움을 줄 수 있다. 방 부장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으니 알아봐 달라’는 취지였습니다.”

“이런 지시를 받고 방 판사에게 전화한 것은 얼마 정도 후였습니까.”

“(이 상임위원 말을 듣고) 고민하다가 한 시간 안쪽이지 않을까요.”

“고민의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니라, 사건과 관련해서 법리적인 부분 참조하라는 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중략) 공식 의견 전달이라 하면 부담스러워서, 가급적이면 캐주얼하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참고 의견이긴 하지만 따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요. 동기 입장에서 가볍게 검토해줄 수 있겠나, 이런 취지로 얘기한 것 같습니다.”

심 심의관은 “판단 쟁점인 공직선거법(192조4항) 해석에 따라 청구 인용할 것인지, 기각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는 방 재판장 말에 ‘각하가 아닌 본안 판단을 하려나 보다’ 짐작했고, 이를 이 상임위원에게 전달했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 분위기는 냉각됐다. 2015년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반정우)가 통진당 국회의원이 의원직을 돌려달라며 낸 소송에서 “헌재 결정을 다시 심리할 수 없다”며 각하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문성호 판사(전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의 증언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격노’했다. 이규진 당시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 박병대 법원행정처장에게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 선고 결과를 보고하고 돌아왔는데 안절부절못하면서 “전주지법 소송에서라도 사법부 판단 권한에 대한 설시가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심 심의관 전화를 받은 전주지법 재판부 상황은 어땠을까.

검찰은 법원행정처 요구를 받은 방 재판장이 심증을 내보이고, 배석판사이자 주심인 임아무개 판사에게 합의 없이 판결을 선고한 뒤 일방적으로 판결문을 수정하게 하는 등 임 판사의 재판권을 침해했다고 본다(공무상비밀누설·직권남용). 방 부장판사가 재판장을 맡은 전주지법 행정2부는 판사 3명이 합의로 결론을 도출하는 합의부다. 검찰 공소장을 종합하면, 방 재판장은 배석판사들과 선고 이유를 합의하지 않고 원고 쪽 청구를 인용했다. 그리고 법원행정처 판단 방향을 반영해 판결문을 사후 수정했는데,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이 있더라도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당연퇴직하진 않는다는 내용까지 적었다. 이는 재판 쟁점과는 관련 없는 대목이었다.

다음은 배석판사였던 임 판사 증언(2020년 1월16일 이규진·방창현 판사 재판)이다. 그는 배석판사뿐 아니라 재판장인 부장판사에게도 판결문 작성 권한이 있다고 설명하면서도, 그날 다소 이례적인 부분이 있었다고 말했다.

“방창현 재판장이 판결문 작성을 이례적으로 담당하면서 판결 이유를 전면적으로 직접 수정했는데, 이례적인 건 맞습니까.”(검사)

“다른 사건에 비해서는 이례적입니다.”(임 판사)

“판결 선고 이후에 합의한다는 게 개념상 가능한가요.”

“판결 선고 이후에 합의한 적은 없습니다.”

“증인도 이후 절차를 합의라고 판단한 건 아니시죠.”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방 재판장은 임 판사 증언으로, 합의부 합의의 범위를 넘어서진 않은 점이 명백해졌다고 항변했다. 심 심의관과는 친구 사이로 법률 고민을 주고받은 것일 뿐 비밀을 누설할 고의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말 기억나지 않는다”

재판에 개입해 헌재를 견제하려는 법원행정처의 기획 시나리오는, 전주지법 행정2부 선고 날인 2015년 11월25일 출입기자단에 보낸 전자우편에서 법원행정처와 재판부가 물밑 교감한 뉘앙스를 풍긴 전주지법 공보판사의 실수로 발각될 위기에 처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법원행정처 지휘부는 11월25~27일 사흘간 매우 급박하게 움직였다.

11월25일 전주지법 보도자료 배포 직후 법원행정처는 헌재 업무를 담당하며 여러 문건을 생산했던 문성호(사법정책심의관) 판사 개인 견해로 축소·포장하는 쪽으로 공식 입장을 정리했다. ‘정당 해산 결정에 따른 국회의원, 지방의원 직위 상실 여부에 관해 법원이 판단 권한을 갖는다고 선언한 부분이 적절하다는 견해는 주무 심의관의 개인적 의견임. 주무 심의관은 헌재에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를 선언할 권한이 있다는 헌법, 법률의 명문 규정이 없음을 이유로 위와 같은 견해를 갖게 된 것이다.’

이튿날인 26일 오전 법원행정처 실장 회의가 열려 구체적인 사태 수습 방안이 논의됐다. 이날치 이 상임위원 업무일지에는 “방창현 부장 통화 내용 외부단속 要(요)/행정법원도 입단속 要/조직적(으로 개입)했으면 반대판결 나왔겠느냐(최악)”라고 기재돼 있다. 이 회의에선, 법원행정처가 전주지법과 서울행정법원을 접촉한 사실이 외부에 알려져선 안 된다는 이야기가 오갔고, 두 법원 판결 취지가 다르다는 대응 논리도 논의된 것으로 추측된다.

오전 10시30분 실장 회의가 끝나자 법원 대응은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① 오전 10시35분 방창현 재판장은 판결 논점과 상관없는 ‘비례대표 국회의원’ 부분을 삭제해 등록하라고 배석판사들에게 지시했다. ②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은 헌재를 달래려고 ‘문건 작성 및 유출 경위’란 제목의 해명 논리가 담긴 문건을 들고 오전 10시50분 남산터널을 지나 헌재를 찾았다. ③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뺄 것이다, 빠질 것이다’라고 이규진 상임위원이 귀띔한 대로 판결문이 수정되자, 다음날인 27일 헌재 파견 법관 최희준 부장판사는 판결에 문제가 없다며 헌재 재판관들에게 해명 이메일을 보냈다.

검찰은 법원행정처가 각 재판부에 판결 법리를 전달해 판결 이유에 반영하게 한 다음, 그 사실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허위 해명자료를 만들어 은폐하려 한 정황이 뚜렷하다고 주장한다.

지난 3월27일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에서는 이번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규진 전 양형위 상임위원 증인신문이 시작됐다. 검찰과 변호인 모두 벼르던 증인으로, 임종헌 전 차장 이상, 즉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고영한 전 법원행정처장과의 공모관계를 밝혀내기 위한 중요 인물이다. 이 전 상임위원 업무일지와 일정표는 법원행정처 지휘부 회의 내용과 대법원장 지시 내용이 일자별로 빼곡히 담겨 있어, 검찰 수사 단계 때부터 의혹을 규명할 스모킹건으로 불렸다.

그러나 증인이자 피고인인 이 전 상임위원은 업무일지와 일정표를 부연설명하는 정도 이상의 적극적인 진술은 아직 하지 않았다. 그는 “전주지법 재판부도 이런 법리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임종헌 차장의 말에 따라 담당 재판부에 관련 법리를 전달했을 뿐, 재판부 심증을 파악하려는 시도도, 특정한 판단 방향을 판결문에 포함하라는 지시도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법원행정처 관계자에게 ‘법원행정처 공식입장’을 전자우편으로 보내거나, 헌재 파견 근무를 하던 최희준 부장판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판결문이 수정될 것이라고 알려줬다는 정황 또한 “죄송하지만 저는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의 증인신문만 다섯 차례 배정됐는데, 두 차례의 신문이 남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헌재 출범 이후 줄곧 최고 사법기관 위상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헌재를 견제하려고 옛 통진당 관련 사건에서 법원 권한을 우선하는 판결을 이끌도록 기획한 흔적이 드러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 제공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헌재 출범 이후 줄곧 최고 사법기관 위상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양승태 대법원이 헌재를 견제하려고 옛 통진당 관련 사건에서 법원 권한을 우선하는 판결을 이끌도록 기획한 흔적이 드러나 재판이 진행 중이다. 헌법재판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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