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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왜 맞고만 다니냐” 핀잔, 학폭 피해학생에게 도움될까

등록 2020-04-11 09:31수정 2021-02-18 08:37

[토요판] 김선희의 학교 공감일기
⑥폭력의 악순환 끊는 자기 공감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연재에 나왔던 영천(가명)이와 규태(가명)가 여러 날에 걸쳐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며 갈등을 풀었던 일이 있고 몇달 뒤 학교폭력실태조사 설문이 진행됐다.

체격과 힘이 탁월하게 좋은 성후(가명)에게 중학교 3학년 우리 반 남자아이 여럿이 지속해 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응답이 나왔다. 함께 놀다가 성후가 레슬링과 같은 여러 운동 기술을 써서 몸을 누르거나 때렸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장난 같았지만 힘이 워낙 좋아 점차 멍이 들 정도로 아팠다고 한다. 종종 심부름도 시켰는데, 거절하면 주먹으로 세게 때리기도 했다고 한다.

피해자들과 일일이 상담을 해보니 설문과는 달리 피해 사실을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 회부되면 부모님이 알게 될 것을 가장 걱정했고, 보복도 두렵다고 했다. 마음이 힘들었을 텐데도 정작 사실조사에 나서자 성후를 비롯한 누구에게도 비밀로 해달라고 애원한 것이다.

성후를 불러 피해 학생을 밝히지 않은 채 설문에 관한 내용을 물었다. 성후는 남자들끼리 얼마든지 몸으로 부대끼며 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에게 주먹을 쓴 건 사실이지만 가벼운 장난이었으므로 학교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할 만큼 피해를 느꼈다고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피해 학생들에게 성후의 입장을 전했다. 아이들은 성후의 태도에 더 큰 불안을 느꼈다. 그동안 학급 반장을 통해 자치적 대화로 해결하려 노력했지만 해결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기회에는 반드시 해결하고 싶다며 논의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혼자 피해자로 드러나는 것은 두렵지만 함께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용기를 낼 수 있겠다는 얘기였다. 아이들이 모여 각자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서로의 마음을 묻고 들어보는 자리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같은 반 친구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자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부모님께 말하면 오히려 ‘허우대 멀쩡한 놈이 왜 맞고 다니냐, 너도 때려라’ 등 비난을 들을 걱정도 했다. ‘더 이상 피해를 당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과 ‘피해를 느끼는 내가 문제’라는 두 마음 사이에서 혼란스러워도 했다. 아이들이 자기 마음을 정확히 알아가고 부모님에게 자신 있게 전달할 시간을 갖기 위해 개별 및 집단상담을 며칠 더 진행했다.

마침 정혜신, 이명수의 심리적 심폐소생술(CPR), ‘당신이 옳다’ 특강을 들은 두 학부모가 피해자인 자녀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 덕에 두 아이를 시작으로 한 자기 공감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아이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명확히 인지했고 학폭위에서 다뤄주기를 전적으로 희망했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아이가 용기를 내 우리 반 남학생 대부분이 피해 사실을 밝히게 되었다. 그 가운데 학급 내에서 영향력이 큰 반장과, 학업과 신체발달이 뛰어난 규태 외에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은 아이가 한 명 더 있었다.

몸집이 작고, 전학을 와 친구 관계도 빈약한 영천이였다. 지난 연재에서 밝혔듯, 영리한 규태의 은근한 괴롭힘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끝까지 책임을 물었던 영천이는 한 번도 성후의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다. 영천이를 향한 규태의 괴롭힘은 주로 쉬는 시간에 공공연하게 이루어져 해결 과정도 반에서 공유된 것이다. 폭력을 정당화하려는 사람은 그 누구보다 경계에 민감하다. 그만큼 자기 존엄을 철저히 지키는 사람에게는 결코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다. 그해 나 또한 종종 관리자의 부당한 요구에 항거하는 순간이 있었다.

피해를 보면서도 함께 거부할 용기를 내지 않는 동료들 속에서 홀로 외롭고 비참해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마음속 등대처럼 영천이의 모습이 떠올라 포기할 수 없었다. 결국 교사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리 행사에 심리적 압박감을 주어 자신의 의도대로 통제하던 관리자가 적어도 내게는 깍듯하게 경계를 지켰다.

영천이는 도도한 한 송이 연꽃처럼, 위엄 있고 아름다웠다. 폭력의 시대를 거쳐온 나로서 아이들에게 절실히 길러주고 싶었던 자기 존엄 의식을 나보다도 먼저 깨닫고 실천해온 것이다. ‘한 아이 한 아이 스스로 자기 존엄을 철통같이 지켜내도록 길러내는 것’만이 살 만한 세상, 안전한 세상으로 성큼 나아가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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