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불법행위 관여 혐의 의혹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9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의왕/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2020년 6월9일 새벽 2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불구속 재판의 원칙에 반하여 피의자들을 구속할 필요성 및 상당성에 관해 소명이 부족하다.” 1시간쯤 지난 새벽 3시께 이 부회장의 ‘변호인 일동’은 입장문을 냈다. “법원의 기각 사유는 ‘기본적 사실관계 외에 피의자들의 책임 유무 등 범죄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고, 구속 필요성도 없다’는 취지입니다.” ‘대법관 0순위’, ‘전설의 특수통’ 등 최고의 법률가들이 모여 호화롭다는 말도 부족한 변호인단이 내놓은 해석이라 그런지 은근한 권위가 묻어났다. 이 부회장 영장이 기각되면서 서초동에서는 천문학적인 돈벼락이 쏟아졌다는 소문이 돈다. 재벌과 검찰·법원 전관이 연합팀으로 참전한 ‘건곤일척’의 승부가 이렇게 끝났다.
2019년 5월8일 밤 11시50분.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바이오)의 직원이 구속됐다. 법원은 “범죄 사실 중 상당 부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며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고 했다. 보안 업무를 담당했던 이 직원은 삼성바이오의 공장 마룻바닥을 뜯어 회사 공용 서버와 직원 노트북 수십대를 숨긴 죄로 구속됐다. 이에 앞서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의 상무와 부장은 직원들의 노트북에서 이 부회장을 지칭하는 ‘JY’와 ‘합병’, ‘미전실’이라는 낱말이 들어간 문건들을 삭제하도록 해서 역시 구속됐다.
이들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직원은 죗값을 치른 뒤에 감사 대상이 됐고 직급이 강등되거나 회사를 떠나야 했다. 반면, 증거인멸을 주도해 구속됐던 삼성전자 사업지원티에프 상무는 집행유예로 풀려나 다시 계열사 경영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이 사정을 잘 아는 업계 관계자는 “에피스의 그 직원들은 누구보다 창설 단계에서 회사에 기여한 개국공신들인데, 시킨 일을 실행한 것 때문에 갑자기 모든 책임이 전가되고 회사가 의도적으로 ‘문제 인력’으로 낙인찍는 게 마음이 아팠다”고 했다. ‘오너’의 치부에 대해선 재판에서 “충분한 심리와 공방”이 필요하지만, 그 치부를 숨긴 죄는 “중대하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증거인멸을 주도했던 사업지원티에프 상무가 슬그머니 현업으로 복귀한 일에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은 준법감시위원회에 나와 “부끄럽고 참담하다”고 했다. 며칠 뒤 이 부회장의 ‘초호화 변호인단’은 승계 작업이 없었고, 있었더라도 별일이 아니라고 했다. 승계 작업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의 취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닌지 묻기에 앞서, 직원들이 왜 ‘JY·미전실·합병’이란 낱말을 삭제해야 했는지, 삼성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보상할 건지 궁금하다. 부끄러움과 참담함의 주어도 명확히 했으면 좋겠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