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2일 서울 서초구 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과거 대법원의 지적을 받고 재판부 결정을 번복한 배석판사가 당시 상황에 대해 “입사 3년 차 판사가 그런 지적을 받으면 신분상 걱정을 하지 않겠냐”며 ‘재판 개입’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고 법정에서 증언했다.
22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재판에 정아무개 판사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정 판사가 배석판사로 일하던 2015년 당시 서울남부지법 민사11부는 헌법재판소에 교직원 재직기간 계산과 관련한 조항의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며 한정위헌 취지로 위헌법률심판 제청 결정을 내렸다. 한 사립 의과대학 교수가 공중보건의사 복무기간을 교직원 재직기간에 합산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사립학교교직원연급법의 재직기간 관련 조항에 위헌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해당 재판부에 ‘한정위헌’ 결정을 직권 취소하고 ‘단순위헌’ 취지로 재결정하라고 지시했다. 사법농단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헌법재판소를 견제 대상으로 여긴 임 전 차장이 재판부의 결정을 번복하도록 직권을 남용한 것으로 봤다. 정 판사는 이 사건의 주심이었다.
정 판사는 위헌법률심판 제청 직후 법원행정처로부터 결정 취소를 요구받은 것에 대해 “법관으로 임관한 지 얼마 안 돼 ‘(대법원이) 감히 내 판단에 간섭해’라기 보다는 내가 뭘 잘못했다는 생각이 컸다”고 증언했다. 이어 “소신이 꺾였다기보다 당혹스러웠다”며 “대법원에서 하지 말라는 행동을 했는데 ‘위에서 봤구나’라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정 판사는 법원행정처로부터 결정 취소를 요구받은 당일 배우자에게 “‘연임이 안 되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했던 것 같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에 임 전 차장 쪽 변호인이 “진지한 고민인가, 아니면 법원에서 사고를 쳤다는 취지로 말했나”라고 묻자 정 판사는 “입사 3년차 판사가 감히 접근한 적도 없는 상급기관에서 그런 지적을 받았다면 신분상의 걱정을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정 판사는 재판부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고 하자 눈물을 흘리며 “결정을 취소하면서 법원행정처나 다른 사람이 검토를 해줬든 어쨌든 제가 검토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상당히 부끄럽다. ‘당신이 무슨 권리로 내가 내린 판단에 왈가왈부하느냐’고 기분이 나빴어야 했는데 안위를 더 걱정했던 부분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윤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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