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이흥구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대법관 후보자로 임명제청되자 그의 과거 이력이 화제였습니다. 서울대 법대 재학 시절 운동권 학생이었던 이 후보자는 1985년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일명 ‘깃발 사건’)에 연루돼 유죄를 선고받은 전력이 있는 ‘국가보안법 위반 1호 판사’였기 때문인데요. 그렇다면 법원에 ‘국가보안법 위반 2호 판사’도 있을까요? 한 독자가 표한 이런 의문을 계기로 취재를 해봤습니다.
법원행정처에 문의했더니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법관으로 임용된 명단은 따로 관리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습니다. 공식적으로 확인할 순 없었지만 과거 기사를 통해, 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됐거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판사가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지난 2000년 송영길 새천년민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1996~2000년까지 법관 임용 신청자 가운데 임용이 거부된 17명 중 9명이 시국사건 관련 전과자”라고 밝혔습니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보안법을 위반한 전력이 있는 사법연수원 수료생들이 있긴 했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판사 임용의 문턱을 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2004년에는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이아무개씨가 “보안법 위반 전력을 문제 삼아 법원이 탈락시켰다”는 의혹을 제기했는데, 대법원은 “종전에도 보안법 위반자 중에 기소유예자 4명, 집행유예 선고자 1명 등 5명을 임용한 사례가 있다”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이씨의 문제 제기로 법조계에선 ‘보안법 위반 전력 수료생의 판사 임용이 정당한가’를 놓고 논쟁이 오갔습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부정했기에 법관으로 임용돼선 안 된다’는 의견이 다수였는데, 당시 한 변호사는 “학생 시절 정의감에 불타 좀 과격할 수 있는 이념이나 활동에 경도된 전력이 있다 해서 법관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결정적인 장해 요소가 될 수 없다”는 칼럼을 <중앙일보>에 기고하기도 했습니다.(
관련 칼럼 보기) 이 글을 쓴 사람이 당시 민변 사무총장이었던 김선수 대법관입니다.
판사 임용의 근거가 되는 개정 법원조직법 제43조에서는 △금고형 이상의 실형을 선고받은 사람 △정당의 당원 신분을 상실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대통령 선거 후보자에게 자문이나 고문 역할한 지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대통령비서실 소속 공무원으로 퇴직 뒤 3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 △각종 선거 후보자(예비후보자 포함)로 등록한 지 5년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법관으로 임용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설령 수사기관에 구속됐어도 기소유예 처분받거나 집행유예를 선고받으면 판사 임용은 가능한 것이죠.
그렇다면 2004년 당시 판사로 일하고 있다던 5명(기소유예 4명, 집행유예 1명)은 지금도 현직에 있을까요.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인사 관련 정보이기 때문에 이들의 현재 상황은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집행유예 선고자 1명은 이 후보자인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또 ‘민주화 운동으로 인한 보안법 위반 전력이 지금도 판사 임용에 걸림돌로 작용하냐’는 질문에는 “법관 임용에서 탈락한다는 것은 탈락사유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전과 이력은 판사 임용에 평가 요소 중 하나로 작용할 뿐이지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장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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