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기 전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에게 부적절한 문자메시지를 보냈던 강민구 부장판사가 6개월 동안의 연구 기간을 마치고 서울고법 언론 전담 재판부로 복귀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장충기 문자’로 언론의 비판을 받았던 강 부장판사가 언론사 상대 민사소송을 맡게 됨에 따라 이해충돌은 물론 공정한 재판이 가능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올해 2월, 안식월 개념의 사법연구 발령을 받았던 강 부장판사는 8월13일 서울고법 민사13부 재판장으로 돌아왔다. 앞서 강 부장판사는 부산지법원장으로 있던 2016년 장 전 사장에게 삼성에 근무하던 친동생 거취 관련 민원으로 읽힐 수 있는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실이 확인돼 입길에 올랐다. “동생이 김 사장의 억압 분위기를 더 이상 못 견디어해서 이달 중이나 인수인계되는 대로 사직하라 했습니다. 아직도 벙커식 리더십으로 부하를 통솔하는 김 사장이 안타깝습니다. 그동안 진 신세를 가슴에 새깁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성매매 영상이 공개된 뒤에는 ‘이 회장의 성매매는 오래 살기 위한 양생법’이라는 취지의 블로거 칼럼을 장 전 사장에게 전송하기도 했다.
강 부장판사가 부임한 서울고법 민사13부에는 애초 장 전 사장 관련 보도를 한 <문화방송> ‘스트레이트’ 사건이 있었지만 강 부장판사 복귀 뒤 사건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됐다. 2018년 4월 강 부장판사의 ‘장충기 문자’ 내용을 상세히 보도했던 ‘스트레이트’는 약 한달 뒤에 장 전 사장이 아스팔트 우파 육성 계획을 국가정보원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에서 바로 사라졌다고 보도했고, 이에 네이버가 정정보도를 청구한 사건이었다. 강 부장판사와 <문화방송>의 껄끄러운 관계 때문에 재배당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지만 서울고법은 이를 부인했다. 강 부장판사 친족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에서 네이버 사건을 대리해 ‘공정한 재판에 대한 우려’를 낳을 수 있어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에 따라 재판부를 바꿨다는 것이다. 그러나 강 부장판사 재판부에는 ‘피디수첩’의 장자연 사건 보도에 대한 조선일보사의 정정보도 청구 등 문화방송과 관련된 다른 소송도 계류돼 있다.
강 부장판사는 언론 전담 재판부로 부임하기 일주일 전인 지난 8월7일에는 <문화방송>의 검·언 유착 의혹 보도 비판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기도 했다. “언론기관과 권력기관이 합세하여 무슨 덫 같은 것을 설치해서 특정인이 그 함정 속에 빠지기를 기다리다가 여의치 않으니 전파 매체를 통해 사전에 계획한 작전대로 프레임을 국민에게 전파”한다며 문화방송의 보도를 권·언 유착으로 본 것이다. 언론 사건을 전담할 재판장이 보도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에 가세한 셈이다.
그러나 대법원은 강 부장판사의 복귀와 언론 사건 전담에 별다른 문제의식이 없는 상황이다. 지난 7일 열린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이해충돌 우려가 제기됐지만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그 자체로 이해충돌이 되는지는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만 답했다.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이 “법관이 품위를 손상하거나 법원 위신을 떨어뜨린 경우 징계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는데 (장충기 문자) 이 사건은 징계 사유가 안 되느냐”고도 물었지만 “구체적으로 내용을 모르고 있어 확인해보겠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번 경우처럼 언론 보도로 비판을 받던 당사자가 해당 언론사 사건을 맡게 됐을 때 이해충돌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는 명확한 기준은 아직 없다. 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분명 부적절해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상황을 막을 방법은 현재로선 없고 해당 법관을 배제하는 문제도 재판 독립상 신중해야 한다. ‘장충기 문자’ 사건 당시 법원이 감찰·징계 등을 철저히 했다면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판사도 “재판에서는 공정해 보이는 외관도 중요한데 아직까지 법관의 이해충돌 범위에 관한 고민을 법원에서 깊게 하지 못하고 있다. 법관 이해충돌의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범위를 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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