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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착취물 처벌하려 해도, 가해자 고의성 입증 ‘또다른 벽’

등록 2020-11-23 04:59수정 2020-11-23 08:37

[n번방 보도 1년]
‘음란물 유포죄 판결’ 315건 분석

박사방과 n(엔)번방 등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세계(<한겨레> 2019년 11월25일치) 들춰낸 지 1년, 〈한겨레21〉은 11월23일 그동안 밝혀진 디지털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저장할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연다. ‘n개의 범죄’(가해자 조직도), ‘n번의 오판’(디지털성범죄 판결문 분석), ‘n명의 추적’(연대의 역사), ‘n번방 너머n’(성교육 자료), 그리고 기록(기사 모음)을 담았다. ‘가해자의 n’이 ‘연대의 n’으로 바뀌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 지민(가명)씨는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에 유포된 2016년 이후 4년여를 재유포자를 잡는 데 쏟아부었다. 재유포자들을 특정해 세차례에 걸쳐 100여명을 경찰에 넘겼다. 그러나 같은 시기, 같은 영상을 유포했음에도 누구는 성폭력처벌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누구는 음란물 유포죄가 적용됐다.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음란물 유포죄는 성폭력처벌법이 정의하는 ‘성범죄’가 아니다. 그래서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나 신상정보 공개와 같이 성범죄자에 내려지는 부가 처분도 없다. 무엇보다 지민씨는 자신의 불법촬영물이 ‘음란물’로 적힌 데 말로 표현하기 힘든 절망감을 느꼈다.

이른바 ‘엔(n)번방 사건’으로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은 불법촬영물의 촬영·유포는 징역 7년, 벌금 5천만원 이하에 처하도록 법정형을 높였다. 또한 불법촬영물의 구입·소지·시청까지 처벌한다. 그러나 사각지대가 있다. 불법촬영물 가해자가 성폭력처벌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받는 사례들이다. 성폭력처벌법의 그물망을 통과한 가해자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불법촬영물은 단순 ‘음란물’처럼 취급된다.

■ 음란물 유포 6건 중 1건이 ‘불법촬영물’로

음란물 유포죄는 성인영상물 유포에나 적용되는 법으로, 건전한 성 풍속을 보호하는 게 목적이다. 법정형도 징역 1년, 벌금 1천만원으로 낮다. <한겨레21>이 2017년 1월~2020년 7월 음란물 유포죄 판결문 315건(유죄 308건)을 분석한 결과, 6건 중 1건(51건·16%)이 피해자가 존재하는 불법촬영물로 분석됐다.(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n번의 오판(stopn.hani.co.kr/fail/)) 하지만 형량은 벌금형(24건)이 가장 많았고 집행유예(19건), 실형(4건)이 그다음이었다. 선고유예와 무죄는 각각 2건이었다. 2018년 500회 넘게 ‘음란물’을 유포한 헤비업로더가 인터넷 웹하드 사이트에 피해자의 성관계 영상을 배포(벌금 700만원)하거나 신원을 알 수 없는 여성들의 화장실 불법촬영물을 업로드한 사례(벌금 300만원)도 있었지만 가벼운 처벌에 그쳤다.

■ “피해자 특정, 가해자 의도 입증 못 해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진 이유가 무엇일까. 경찰서마다 성인지감수성이 다르고(수사기관의 문제), 특정인의 얼굴을 나체 사진과 합성하는 범죄와 같이 성폭력처벌법 개정 전에는 음란물 유포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었던(법·제도의 지체) 게 주요 이유로 꼽힌다. 또한 불법촬영물과 ‘음란물’을 구분짓는 게 어려울 때도 많다. 영상 속 피해자를 찾지 못하거나, 특정되더라도 ‘불법으로 촬영·유포된 영상인지 몰랐다’는 가해자의 주장을 수사기관이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기도 한다. 경찰 관계자는 “고의는 처벌의 기본 원칙이다. 피해자를 찾지 못하면 촬영물이 의사에 반해 유포됐는지 알 수 없고, 피해자를 찾더라도 가해자도 의사에 반해 유포된 촬영물인지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는지 증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 개정된 성폭력처벌법의 처벌 조항(불법촬영물 구입·소지·시청)을 적용하기 위해서도 가해자의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반성폭력 활동가 마녀는 “성폭력처벌법의 법정형이 높아지고 양형기준도 강화되다 보니, 수사기관이 성폭력처벌법보다 입증 부담이 적은 정보통신망법을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고한솔 <한겨레21> 기자 s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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