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보도 1년]
피해자의 편지 ‘그 사람들에게’
피해자의 편지 ‘그 사람들에게’
박사방과 n(엔)번방 등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세계(<한겨레> 2019년 11월25일치)를 들춰낸 지 1년, 〈한겨레21〉은 11월23일 그동안 밝혀진 디지털성범죄 세계를 정리하고, 앞으로의 기록을 저장할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연다. ‘n개의 범죄’(가해자 조직도), ‘n번의 오판’(디지털성범죄 판결문 분석), ‘n명의 추적’(연대의 역사), ‘n번방 너머n’(성교육 자료), 그리고 기록(기사 모음)을 담았다. ‘가해자의 n’이 ‘연대의 n’으로 바뀌는 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디지털성폭력 피해자 4명이 ‘너머n’에 6통의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중 가해자에게 보낸 한 피해자의 편지를 먼저 공개합니다. 나머지 편지들은 11월27일 펴내는 <한겨레21> 1340호에 실립니다.
여성의 연대로 세상은 바뀌고 있다
‘너 소라넷 하니?’
2015년 11월 트위터에 계정 하나가 만들어졌다. 이 계정은 ‘소라넷’의 트위터 계정을 팔로 한 사람들에게 일일이 멘션을 보냈다. “소라넷이 그렇게 좋니?”라고. 당시 소라넷에는 불법촬영물이 수시로 올라왔고, 만취한 여성을 상대로 성폭행 모의를 하기도 했다. “남의 성생활을 왜 까발리냐”, “성적 자유” 같은 반발이 이어졌다. 불법 사이트 이용자들을 추적하던 이 계정은 신고를 당해 정지됐다. 그러자 유사 계정들이 “소라넷 하니?”라고 대신 물었다.
언제나 여성의 연대가 있었다.(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 n번의 추적(stopn.hani.co.kr/we/)) 2016년 “소라넷이 해외 서버라 수사가 어렵다”던 수사기관을 움직이게 한 것도, 2019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을 세상에 처음 드러낸 것도, 2018년 ‘웹하드 카르텔’을 들춘 것도 모두 그들이었다. 여성들은 디지털성착취에 맞서 끊임없이 ‘너 소라넷 하니?’라고 묻고, ‘#n번방_따로없다_너희도_공범이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또 다른 n번방이 솜방망이 판결을 먹고 자랄 수 없도록 재판을 모니터링한다.
피해자들에게 손을 내민 것도 여성들이었다. 이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했다. 유사 n번방의 피해자인 ㄱ씨는 “나를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희망이 생겼다”고 <한겨레21>에 편지를 보내왔다.
2016년, 17년 동안 유지돼온 소라넷이 폐지됐다. 2020년 9월 디지털성범죄의 양형 기준이 확정됐다. 10월 텔레그램 성착취방인 n번방과 박사방을 만든 ‘갓갓’ 문형욱과 ‘박사’ 조주빈에게 무기징역이 구형됐다. 그러나 여성들은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텔레그램 성착취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모인 ‘리셋’과 ‘eNd’는 11월2일에 탄원서 2만장을 대구지법 안동지원에, 13일엔 탄원서 8만장(33개 상자)을 서울중앙지법에 각각 제출했다. 1심 선고를 앞둔 문형욱과 조주빈의 엄벌을 재판부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의 서승희 대표는 “성착취 영상물이 웹하드에서 텔레그램으로 옮겨갔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 (반디지털성범죄 운동으로) 피해 영상물 유통량이 확연히 줄었다”고 말했다. 여성의 연대로 세상은 바뀌었고, 바뀌고 있다.
장수경 <한겨레21> 기자 flying71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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