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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영수 특검팀 4년2개월 ‘고난의 행군’…“개인적으로 안타깝다”

등록 2021-01-18 16:07수정 2021-01-18 16:32

100명 가운데 15명 남아
삼성 사건은 3명이 공소 유지
이재용 풀어준 2심 때 큰 위기
양재식 특검보, 허진영 특별수사관 맹활약
지난 2016년 12월21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박영수 특검팀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현판식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어방용 수사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공동취재사진
지난 2016년 12월21일 최순실 게이트에 대한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한 박영수 특검팀이 서울 대치동 특검 사무실 앞에서 현판식을 열고 있다. 왼쪽부터 어방용 수사지원단장, 윤석열 수사팀장, 양재식 특검보, 박충근 특검보, 박 특검, 이용복 특검보, 이규철 특검보, 조창희 사무국장. 공동취재사진

2017년 2월28일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특검팀의 종무식이 열렸을 때였다. 박영수 특검은 팀원들을 한명씩 단상으로 불러 일일이 악수를 하며 표창장을 건넸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시 종무식에 참석했던 특별수사관들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로부터 4년 가까이 흐른 1월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박영수 특검팀에 남은 15명의 특별수사관들은 그때 생각이 떠올랐다.

당시 90일(준비기간 20일 포함)의 1차 수사기간이 끝날 무렵 박영수 특검은 당시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 수사 연장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박 특검은 2017년 3월6일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한정된 수사기간으로 수사가 절반에 그쳐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박 특검은 수사 착수 때 파견검사와 수사관(변호사)들에게 “모든 것은 내가 책임진다. 여러분은 수사에만 전념하라”고 말했다. 이 말은 특검팀에 파견된 수사 경험이 전무한 ‘초짜’ 변호사뿐 아니라 수사 경험이 많은 파견검사들한테도 큰 힘이 됐다. 당시 이재용 삼성 부회장에 대한 수사는 경제지 등 재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들의 공격 대상이었다. 박근혜 정권의 협박에 못 이겨 최순실을 지원했을 뿐인데 쓸데없이 왜 수사를 하느냐는 논리였다.

하지만 앞서 검찰 수사 단계에서 이미 이 부회장의 뇌물 혐의를 입증하는 증거가 많이 확보돼 있었다. 검찰 수사기록은 이 부회장을 처벌하지 않을 수 없도록 작성돼 있었다. “국정농단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라고 만든 특검인데, 혐의가 명백한 사안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당시 특검팀 분위기였다고 한다. 특검팀은 이 부회장을 뇌물 혐의로 기소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첫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특검팀의 최대 위기였다. 삼성 수사팀에 배속된 수사관들한테는 더욱 큰 충격이었다. “영장실질심사 당일(2017년 1월19일)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어요. 기각될 것이라고 예상한 팀원들은 거의 없었죠. 그래서 이 부회장의 영장을 집행하기 위한 ‘집행조’에 지원해서 영장심사 결정문을 받으러 법원 당직실에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날 새벽에 나온 결정문에 기각 도장이 찍혀 있는 거에요. 얼마나 충격이 컸는지 함께 간 팀원들 모두 아무 말도 못했죠. 법원에 제출했던 수사기록을 여행용 가방에 주섬주섬 챙겨 담는데 기분이 정말 참담했어요.” 당시 수사팀에 참여했던 한 변호사의 말이다. 박 특검은 그날 새벽 영장 기각을 보고 받자마자 삼성 수사팀 전원에게 하루 동안 강제 휴식을 ‘명령’했다. 팀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기 위한 조처였다.

삼성 수사팀은 곧바로 재청구 작업에 착수했다. 수사팀은 영장 기각 사유를 분석한 뒤 보강 조사를 거쳐 이 부회장의 영장을 재청구했다. 재청구된 영장은 2월17일 새벽에 발부됐다. 팀원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하지만 수사관들은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의 총수가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해야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구시대의 병폐인 정경유착이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 씁쓸했다.

박영수 특검팀은 초반에 파견검사 20명, 파견공무원 40명을 합쳐 수사 인력만 100명에 이르는 대규모 특검이었다. 특검 생활은 ‘고난의 행군’이었다. 아침 9시 출근-밤 1시 퇴근이 일상이었다. 주말 근무는 필수였다. 압수수색이 있는 날에는 새벽 5시에 출근해 압수수색을 한 뒤 다음날 새벽 4시에 특검 사무실로 복귀했다. 몸이 아프지 않은 팀원들이 없었다. ‘몸을 갈아가면서 일을 한다’는 말이 실감났다. 팀원들은 수사할 때는 정작 아픈 줄도 몰랐다고 한다. 수사기간이 끝난 뒤에야 너도나도 병원으로 향했다.

특검 생활은 ‘보안’의 일상이기도 했다. 박영수 특검은 유독 수사보안을 강조했다. 섣부른 ‘언론플레이’는 상대에게 역공의 빌미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상대는 탄핵은 당했지만 ‘살아있는 권력’이었다. 태극기 부대는 연일 특검 사무실 주변에서 수사 규탄 시위를 벌였다. 특검팀은 내부 감찰팀을 구성해 팀원들의 수사기밀 유출 여부를 감시했다. 또 ‘적법절차’와 ‘인권보호’ 지침을 지키도록 독려했다. 특검 수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기본에 충실해야 했다. 파견검사와 수사관들은 자기 사건이 아니면 수사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수사의 큰 그림은 박영수 특검을 비롯한 수뇌부가 그렸다.

2018년 2월5일 이재용 부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났을 때 특검팀은 또 한 번 위기를 맞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의 최순실에 대한 승마 지원을 뇌물로 보지 않았다. 박근혜, 최순실 재판에서는 뇌물로 인정된 것이었다. 특검팀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판결이었다. 재판 진행 상황을 왜곡하는 몇몇 언론들을 보면서 삼성의 힘이 막강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특검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특검 원년 멤버 중 끝까지 남은 양재식 특검보와 허진영 변호사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 결과 최종 승리는 박영수 특검팀의 몫이었다. 선고 결과를 듣고 박영수 특검은 “개인적으로는 국가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안타깝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특검팀 관계자는 전했다.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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