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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3년 뭉갠 사법개혁…‘사법추락’ 불렀다

등록 2021-02-05 21:50수정 2021-02-06 10:54

김명수 대법원장 리더십 최대위기
사법농단 솜방망이 징계로 일관
임성근 녹취록서 거짓말 파문까지
“법원 내 개혁 동력 꺼질라” 우려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이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과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나눈 대화 녹취록 공개 파장이 사법개혁의 적임자를 자처했던 김 대법원장의 리더십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정치권 눈치를 보는 듯한 대화 내용의 부적절함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3년이 넘도록 사법농단 사태 청산이 지지부진하고, 취임 때 약속했던 사법개혁에 관한 핵심 의제들이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점에 대한 실망이 한꺼번에 분출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국회에 책임 미루기만 거듭”

지난 4일 공개된 김 대법원장과 임 부장판사의 대화 내용을 접한 판사들은 김 대법원장의 무책임함을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이 사법부를 책임지는 수장으로서 사법농단 사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 없이 상황을 모면하는 데 치중한 것 같다는 평가다. 김 대법원장이 사표 수리 요청을 위해 방문한 임 부장판사에게 “내가 사표 수리했다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차진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5일 “사법행정권 남용의 부작용을 개혁하겠다고 나섰던 대법원장이 정치권의 눈치보기를 한 셈”이라고 짚었다. 사법부 수장으로서 사법농단 연루 법관의 책임에 대한 고민 없이 정치적 영향력을 이유로 ‘탄핵’을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무마한 대처가 외려 사법부 독립 훼손 비판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취임 뒤 두차례의 사법농단 진상조사를 진행했고, 2018년 11월에는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법관들 스스로 “탄핵소추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고 의결한 바 있다. 김 대법원장은 당시 전국법관대표회의를 주도한 소장 판사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훗날 김 대법원장이 끌어낸 결과는 이렇다 할 만한 게 없었다. 조사 결과에 대한 책임 가려내기와 법관들의 공식 의견에 대한 후속 조처가 사실상 전무했다. 사법농단 연루 법관 징계 역시 징계시효가 만료되기까지 시간을 끌며 10명의 법관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는 데 그쳤다. 그마저도 최고 1년 정직은 없었고, 견책에서 정직 6개월의 ‘솜방망이’ 징계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이 지난 2018년 6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열려, 법학교수, 법학자,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대법원 사법농단 규탄 법률가 기자회견’이 지난 2018년 6월 서울 서초구 대법원 동문 앞에서 열려, 법학교수, 법학자, 변호사 등 법률가들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지키지 못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을 규탄하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수도권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법관대표회의에서 격론을 벌여 판사들이 (탄핵 절차를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고, 대법원장은 그와 별도로 법원의 자정 노력을 통해 (사법농단을) 해결하려고 했어야 한다. 그러나 대법원장은 후속 조처를 취하진 않았고, 리더로서 책임을 지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징계를 했다면 형사처벌은 못 해도 헌법이 정한 재판의 독립성 침해는 엄단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됐을 텐데 그러지를 못했다. 법원 전체에 잘못된 시그널을 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활동을 하는 또 다른 변호사도 “(임 부장판사 사표 수리 반려도) 상황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사표 수리로 인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의 대화가 비판받는 건 (그동안) 전체적인 사법농단 처리를 미온적으로 해왔다는 측면을 반영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법원장이 법원 차원에서의 책임 묻기를 최소한으로 한 뒤 사법농단 후속 조처를 국회로 넘기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다.

사법농단 후속 조처뿐 아니라 지난 3년간 대법원장이 보여준 행보 역시 사법개혁 의지와 철학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법행정이나 법원행정처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대법원장이) 좋은 재판을 강조했는데, 재판 투명성이나 법원 신뢰도가 별로 커진 것 같지 않다”고 했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법관 탄핵과는 별도로 법원의 자체적 개혁 과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누구에게도 욕먹고 싶지 않고 책임지고 싶지 않으니 인사도 제도개혁도 모두 적당한 선에서 타협으로 끝나버렸다. 그러니 변화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사법개혁 대의 흐려선 안 돼”

다만 이번 사태가 사법농단을 계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던 사법개혁의 정당성까지 훼손해선 안 된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대법원장 탄핵론, 사퇴론 등을 거론하는 외부의 공세가 정작 필요한 제도적 사법개혁과 법원 내부개혁 논의 전체를 뒤덮을 수 있다는 우려이기도 하다. 지방법원의 한 판사는 “탄핵 논의의 중요성과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별개의 문제다. 탄핵이 법관 독립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도 “미흡하더라도 현재 대법원이 추진하는 사법개혁의 흐름이 있다. (이번 논란으로) 법원 내 사법개혁 추진 동력이 꺼지는 것은 아닐지 우려된다”고 했다.

정욱도 대구지법 부장판사는 전날 법원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법과 상식에 따라 당위를 추구하는 일에 정치적 시각을 투영시켜 입맛대로 덧칠하고 비난하는 행태가 사법부의 독립을 흔드는 오늘의 상황을 우려한다”며 공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어 “정치를 하는 것은 (김명수, 임성근) 두 분이 아니라, 내 편이 아니라고 보이는 사람을 적으로 규정함으로써 법원에 영향을 미치고 싶어 하는 외부의 정치세력이라고 생각한다”며 “탄핵도 비판도 정상적 정치 과정의 하나이고 헌법상 보장되는 일이지만, 사법부 구성원들까지 외부의 부당한 정치화에 휘말려 자중지란을 벌이는 일은 부디 없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장예지 신민정 기자 pen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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