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1월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5억원 이상 횡령·배임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기업 총수는 형이 확정되는 즉시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복역 중이거나 집행유예 기간에 경영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취지다. 최근 법무부로부터 ‘취업제한’ 통지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옥중 경영’은 물론, 취업제한 기간 중 그가 법무부 승인을 받아 업무에 복귀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2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행정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국현)는 지난 18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취업제한을 통보한 법무부를 상대로 낸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박 회장은 130억여원을 배임한 혐의 등으로 2018년 11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유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그는 이듬해 금호석화 대표이사로 복귀하려 했지만,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의 취업제한 조항에 따라 취업이 제한되자 “집행유예 기간은 취업제한 기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소송을 냈다. 취업제한은 집행유예 기간이 끝난 뒤부터 적용된다는 논리였다.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한겨레> 자료사진
법원은 “취업제한은 유죄 판결을 받은 때부터 시작해야 (취업)제한의 취지를 살리고 그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며 박 회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취업제한 조항을 둔 이유는 “범죄행위자가 일정 기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해, 관련 기업체를 보호하고 건전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려는 목적”이므로 집행유예 기간이라고 해서 달리 볼 수 없다는 판단이다.
그동안 재계 일각에서는 법의 모호함을 이용해 ‘옥중 경영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꾸준히 제기했다. 특경가법에 취업제한 시점이 ‘징역형은 형 집행 종료 뒤 5년, 집행유예는 종료 뒤 2년’으로 명시돼 있을 뿐, 형 집행 중 적용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단으로 이런 주장은 힘을 잃게 됐다.
이재용 부회장도 ‘옥중 경영’을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씨에게 삼성전자 돈으로 86억여만원의 뇌물을 준 혐의로 2년6개월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인데, 지난 15일 법무부의 취업제한 통보를 받았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경영학부)는 “삼성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 부회장이 미등기임원이건 보수를 안 받건 간에 취업제한에 따라 복귀를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부회장이 법무부 특정경제사범관리위원회의 심의와 법무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경영에 복귀할 수도 있지만, 이번 판결 취지에 비춰보면 쉽지 않을 전망이다. 박 회장 사건 판결문을 보면 “(신청인이) 대체 불가능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증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창민 교수는 “이 부회장의 공백이 몇 번 있었지만 삼성전자는 큰 문제 없이 운영됐다”며 “글로벌 기업인 삼성전자가 이 부회장을 ‘대체 불가능한 존재’라고 알리는 순간, (총수) 리스크를 인정하는 셈이다. 오히려 시장에서 불안요소로 작동할 수 있다”고 짚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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