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8일 퇴임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연합뉴스>
‘사법농단’에 연루돼 법관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탄핵 심판대에 오른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28일 법관 임기 만료로 퇴임하면서 법복을 벗고 재판을 받게 됐다. 임 부장판사가 이 사건 주심인 이석태 헌법재판관을 기피신청한 영향으로 애초 지난 26일로 계획된 탄핵심판 변론 준비기일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법조계 안팎에선 임 부장판사가 법관이 아닌 신분으로 탄핵심판을 받으려고 재판관 기피신청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임 부장판사는 퇴임을 앞둔 지난 26일 법관 전용 내부 통신망에 인사를 남겼다. 그는 “법원가족 여러분께 큰 심려를 끼쳐 너무도 송구스럽다”며 “저로 인해 고통이나 불편을 입으신 분들에게 진심으로 용서를 청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판 개입’ 의혹과 법관으로서 최초로 탄핵 소추된 점에 대해서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애초 이날은 그의 탄핵심판을 위한 첫 변론준비기일이었다. 하지만 지난 23일 탄핵심판 주심인 이석태 재판관을 기피 신청하면서 기일이 미뤄졌다. 헌재는 재판관 기피신청이 들어오면 민사소송법을 준용한다. 기피신청에 대한 결론을 낼 때까지 소송 절차를 중지하는 것이다. 헌재가 기일을 미룬 것은 26일 전에 관련 결론을 내릴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기피신청은 탄핵심판 대상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퇴임 전 헌재 결정이 나올 것을 우려해 퇴임 뒤 재판을 받으려고 재판관 기피신청을 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헌법연구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헌재에서는 기피신청을 해도 인용된 경우가 거의 없고, 이석태 재판관을 기피한 사유와 임 부장판사의 탄핵 사유는 연관성이 크지 않다”고 짚었다. 앞서 임 부장판사 쪽 대리인단이 기피신청을 하며 든 이유는 이 재판관의 경력이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장과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장 등을 지냈기 때문에 이 재판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다고 임 부장판사 쪽은 주장했다. 하지만 문제가 된 임 부장판사의 세월호 7시간 행적 관련 명예훼손 사건과 민변 변호사 체포치상 재판 개입 행위와 관련해 이 재판관이 직접적으로 연루되거나, 사건과 관련해 특정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헌재도 일반 민·형사 소송보다 더욱 엄격하게 기피사유를 판단한다. 탄핵심판은 전원 재판부에서만 심리해 특정 재판관을 배제해도 다른 재판관과 교체가 불가능하고, 위헌 판단을 할 때도 정족수를 맞추는 재판관 개개인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헌재는 실무 지침서인 ‘헌법재판 실무제요’에서 “현행 심판정족수 제도에서는 (기피 등으로) 재판관이 배제되면 위헌이나 인용 판단의 확률이 낮아질 수 있어 일반재판보다 엄격하게 기피사유를 해석해야 한다”며 “기피사유는 공정한 심판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만을 의미하며 당사자의 주관적인 의혹은 기피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오히려 이 재판관을 뺀 나머지 8명의 헌재 재판관이 모두 판사 출신이어서, 이들 재판관과 임 부장판사의 인연이 공정한 심리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이들 가운데 이영진 재판관을 뺀 7명의 재판관은 모두 임 부장판사와 같은 서울대 법학과 출신이다. 더욱이 유남석, 이영진, 이종석, 문형배, 김기영 재판관 모두 임 부장판사와 서울중앙지법이나 부산지법 등에서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다. 문형배 재판관의 경우, 임 부장판사와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니며 1992∼1996년 부산지법 등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탄핵소추 청구서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임 부장판사가 보인 태도도 탄핵심판을 지연시키기 위한 전략이 아니었냐는 의심을 부채질한다. 지난 4일 국회의 탄핵 의결 직후 청구서는 곧바로 부산고등법원으로 송달됐지만, 임 부장판사는 받지 않았다. 이에 헌재가 그의 집 주소를 확인해 직원을 직접 보내, 본인에게 청구서를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임 부장판사가 퇴임한 뒤 재판을 받게 되면서, 헌재가 탄핵심판을 각하할 것이란 전망에도 더욱 힘이 실렸다. 탄핵의 목적이 해당 공무원을 파면하는 것인데, 이미 퇴직한 상태이기 때문에 재판의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결국 임 부장판사도 이 점을 노리고 재판관 기피신청을 낸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그러나 헌재가 본안판단을 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임 부장판사 개인을 파면시키는 목적을 넘어 법관 독립 침해 행위의 위헌 여부를 헌재가 확인한다는 헌법수호기능 실현 차원에서 심판 필요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헌법연구관이었던 또 다른 법조인은 “헌재는 과거에 종료된 행위라도 헌법적으로 중요한 사안은 판단을 한다는 태도를 취해왔다”며 “탄핵 소송은 전례 자체가 없지만 일반적인 헌법소원 사건에서는 각하 사유가 있어도 본안판단을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헌재는 2013년 긴급조치 1·2호의 위헌 여부를 가릴 때, 긴급조치 사건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아 각하 요건에 든 청구인이 있었지만 “긴급조치의 위헌 여부에 대한 헌법적 해명이 필요하다. 예외적으로 객관적인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를 위해 심판 필요성을 인정한다”며 위헌 여부를 판단한 바 있다.
헌법재판 실무제요에도 “헌법소원의 본질은 ‘헌법질서의 수호·유지’도 겸하기 때문에 기본권 침해 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위험이 있거나 헌법질서를 위해 중요한 사항이라 헌법적으로 그 해명이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경우 심판청구의 이익을 인정한다”고 돼 있다. 탄핵심판을 청구한 국회 쪽 대리인단도 이 점을 강조해 헌재가 본안판단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
장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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