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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매뉴얼만으론 안된다, 가해자는 군 생명 끝난다는 걸 보여줘야”

등록 2021-06-03 16:29수정 2021-06-06 17:17

이명숙 국방부 양성평등위 민간위원장 인터뷰
“제도는 있는데 작동 안해… 인식 개선 없인 안돼
성폭력 관련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 보여줘야”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선임에게 성추행을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 이아무개 중사가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 티셔츠와 과자 등이 놓여 있다. 김윤주 기자

“매뉴얼도 만들고 점차 군이 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와중에 이런 일이 벌어져서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피해자를 못 지켰다는 사실이 착잡하고 실망스럽다. 성폭력 사건과 관련된 제도는 넘친다. 제도가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뿌리내리지 못한 것이다.”

이명숙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민간위원장은 3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공군 이아무개 중사 사건에 대해 “각종 지침이나 매뉴얼이 이 사건에서 한 템포씩 늦고 작동을 안했다”며 안타까워했다.

변호사이자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사장인 이 위원장은 2018년 9월부터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 1기에 이어 2기로 활동하고 있다. 같은 해 2∼4월 국방부 ‘성범죄 특별대책 티에프’(TF) 장을 지내기도 했다. 당시 티에프는 성고충전문상담관 통합지원 매뉴얼 작성과 성폭력 전담수사관 인력보강 등을 권고했고,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국방부 양성평등위원회가 과제를 이어받아 도입을 추진했다. 국방부는 성폭력 예방은 물론 엄정한 사건 처리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위원회와 함께 국방 양성평등 기본계획도 세웠다.

당시 이 위원장이 실태조사를 위해 각 부대를 방문하며 성폭력 관련 피해자를 상담할 때 마다 ‘가해자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 ‘피해자 보호와 비밀보장이 안 지켜진다’ 등의 호소를 많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중사 사건에서도 이러한 ‘호소’들이 지켜지지 않았다. 이 중사의 유족은 “성추행 피해 신고 뒤 무마시도와 괴롭힘 등을 이기지 못해 이 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티에프 당시 제도 개선도 그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성고충전문상담관을 확대하고 매뉴얼도 마련했고, 과거엔 전혀 이뤄지지 않던 가해자와 피해자 분리도 하도록 했다”며 “그런데 이번에는 모든 게 한 템포씩 늦었다. 가해자에 대한 영장청구도 늦었고 훈령 등 각종 지침이나 매뉴얼도 이 사건에서는 제대로 작동이 안 됐다. 실망스럽고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군 구성원들, 나아가 사회 전체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으면 이러한 비극이 반복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성폭력을 저지른 유력 정치인들 사건만 봐도 은폐 시도나, 가해자에 대한 동정론, 2차 가해 등이 벌어진다. 수많은 사례가 우리 사회에 잘못된 학습효과를 불러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장은 “국방부가 성폭력과 관련해서는 절대 용서하지 않고 가해자는 군인으로서의 생명이 끝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줘야 한다”며 군이 더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번에 2주간 성폭력 피해 신고를 받는다는 것도 너무 짧다. 피해자에게는 마음을 먹는데도 2주가 부족하다. 무엇보다 각 부대가 이런 일이 발생할 경우 부대 명예를 걸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용납하지 않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군인이 소속 부대가 지켜주지 않으면 누가 지켜주나.”

이우연 기자 az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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