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6일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연합뉴스
“너무 억울하고 원통합니다.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어요. 참 착하고 예쁜 우리 딸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쓰이게 될 줄 어떻게 알았겠어요. 이렇게 국화에 둘러싸여서….”
아버지는 딸을 떠올리며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아무개 공군 중사는 성추행 피해 신고 뒤 약 석 달이 지난 지난달 22일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이 중사를 그냥 보낼 수 없었다. 억울함을 풀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빈소 대신 지난 4일 밤에야 임시 분향소만 차렸다. 분향소에는 이 중사의 생전 사진들, 평소 고인이 아끼던 반려묘를 대신하는 고양이 인형 등이 놓여있었다. 6일 <한겨레>는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이 중사의 아버지를 만났다.
부모는 아직 딸을 떠나보내지 못했다. 유족은 수사 상황을 지켜보고 억울함이 풀리고 나서 장례를 치르겠다는 생각이다. “아직 해결이 안 됐잖아요. 빨리 해결돼서 우리 딸이 편안하게 쉴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야 딸이 하늘나라에서 안식할 것 같아요. 딸이 아버지 수염을 참 싫어했는데, 장례식을 치르는 날에야 제가 그 수염을 깨끗하게 다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버지의 턱에는 흰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었다.
이 중사는 아버지에게 항상 자랑스러운 딸이었다. “딸이 어릴 때부터 꿈이 군인이었어요. 군인이 되겠다고 고등학교도 공군 관련 고등학교로 갔어요. 졸업하고 부사관 임관이 되고, 항상 걱정할 것 하나 없이 자랑스러웠죠. 착하고 참 배려심이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던 아이였어요.”
이 중사의 유족은 최근 노아무개 준위와 노아무개 상사를 고소했다. 지난 3월 이 중사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최초 보고를 한 상관들로 유족은 이들을 직무유기 및 강요미수 혐의로 고소했다. 또 1년 전 성추행을 한 혐의를 받는 다른 부대 부사관 등을 추가로 고소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이 중사가)과거 엄마에게 했던 말들, 과거 남자친구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등을 (이 중사의 극단적 선택 이후) 종합해보니 추가적인 성추행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1년 전 다른 부대 부사관에 의한 성추행 당시에는 노 준위가 이를 해결해줬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런데 오히려 당시 노 준위가 가해자의 입장에 섰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다른 부대 부사관이 딸이 혼자 사무실에서 철야 근무하는 상황에서 와서 무릎을 꿇은 것도 딸에게 상당한 압력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이가 그 부대에 처음 임관돼서 갔을 때 노 준위와 노 상사가 저희 아이를 자기 조카처럼, 삼촌의 입장에서 보호해 주겠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저희 가족에게 말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며 “회식이나 단합대회라는 명분 하에 성추행을 방조한 것”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이 중사의 아버지는 사건 직후에 아무런 조처가 없던 군과 정부가 이제야 움직이는 것에 대해서도 “안타깝다”고 했다. “그동안 수사기관이나 지휘관들, 책임자들에게 수차례 호소했는데 들어주지 않았어요. 성폭력 사건이 생길 때부터 저희 가족들이 나서서 발로 뛰면서 탄원서도 쓰고, 우리 딸아이가 변호사한테 조력도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상황을 알고 나서 대대장에게 전화해서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도 있었어요.” 그는 사건이 언론에 공개된 뒤에야 유족을 찾아오는 이들에게 분노를 터트렸다. ”언론에 사건이 공개되고 국민청원도 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니까 이제야 공군참모총장, 국방부 장관, 정치인들이 오고 노력하겠다고 해요. 그게 참 유감스럽죠. 딸이 죽음을 선택하기 전에 도움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다만 그는 앞으로의 수사에 마지막 기대를 걸어본다고 말했다. “민간인이 참여하는 군 검찰 심의위원회를 만든다고 하니까, 처음 생기는 위원회에 기대를 걸어봅니다. 또 오늘 대통령이 오셔서 위로하면서 약속해주신 것들이 있으니까, 믿어보려고 합니다. 가해자와 2차 가해자들이 처벌받고 억울한 딸의 명예가 찾아지는 그때 장례를 치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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