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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성폭력 가해자와 같은 배 태운 해군…따라온 건 ‘집단 괴롭힘’

등록 2021-06-07 17:00수정 2021-06-08 02:12

성폭력 피해로 전역한 전 해군 부사관 인터뷰

“해군 부사관 근무 당시 성폭력 피해당해…
군대 문화 바뀌지 않으면 같은 피해 반복될 것”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아무개 중사의 분향소. 연합뉴스
7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아무개 중사의 분향소. 연합뉴스

“정말 제 일 같아서 왔어요. 이 중사가 겪은 피해가 제가 겪은 것과 너무 비슷했거든요. 제가 있을 때처럼 군대는 변한 게 하나도 없네요.”

성추행 피해 신고 뒤 고통을 겪다 지난달 22일 숨진 채 발견된 이아무개 공군 중사의 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 7일 오전 30대 여성 ㄱ씨가 이 곳 분향소에 마련된 이 중사의 영정사진 앞으로 조심스레 국화꽃을 놓았다. ㄱ씨는 해군 부사관으로 근무하던 지난 2013년 직속 상사에게 두 차례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2015년 전역했다고 했다.

ㄱ씨는 조문 뒤 분향소에서 <한겨레>와 만나 “이 중사가 겪은 일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ㄱ씨는 2013년 당시 20대 초반의 초임 부사관 시절 배 위에서 직속상관에게 강간미수 피해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군 생활을 계속 하고 싶었고, 당시 상황을 증언해줄 수 있는 동료가 가해자 지시로 근무지를 이탈한 상태여서 동료에게 피해가 갈까 봐 신고하지 못했다. “저는 배를 계속 타고 싶었어요. 장교가 될 때까지 군 생활을 하는 게 제 꿈이었기 때문에…, 참았어요.”

몇 달 뒤 같은 상관이 ㄱ씨를 재차 성추행하자 ㄱ씨는 간부에게 피해 사실을 보고했다. 하지만 상부 보고는 하지 않기로 했다. “군대에서는 상관에게 피해 신고를 해도 그 상관보다 더 높은 사람이 묵살하면 끝이에요. 제가 피해 신고를 했던 간부보다 상급자가 당시 진급을 앞두고 있었어요. 상부에 보고해도 묵살하고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을 게 뻔해서 보고하지 못했어요.”

ㄱ씨는 신고 대신 가해자에게 재발 방지 약속을 받았지만, 그때부터 괴롭힘이 시작됐다고 했다. ㄱ씨가 소속됐던 해군 부대는 한 번 배를 타면 1년 이상 계속 배를 타야 했다. 성추행 피해 뒤에도 가해자와 분리되지 않았고, 같은 배에서 내릴 때까지 몇 달간 괴롭힘을 당했다. “가해자가 제 서류를 결재해주지 않으려고 제가 못 들어가는 남군 침실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어요. 제가 지나가면 ‘야 이 XX야’라며 소리를 질러요. 가해자의 동료들도 저를 보면 ‘선배 인생 조진 X’, ‘별것도 아닌 거로 유세 떠는 X’이라며 소리를 질렀어요. 저는 제가 배에서 뛰어내릴까 봐 무서워서 갑판에도 못 나갔어요.”

ㄱ씨는 다른 부대로 전출 간 뒤 피해 사실을 정식으로 신고했다. ㄱ씨는 떠났지만 가해자가 여전히 ㄱ씨의 여성 동기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저와 동기라는 이유로 제 동기를 괴롭힌다는 이야기를 듣고 참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 신고했어요. 가해자는 그제야 합의해달라며 제게 처음으로 사과를 하더군요.” 2015년 가해자는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았고, ㄱ씨는 결국 군 생활을 포기하고 전역했다. 가해자도 최종 해임됐다.

ㄱ씨는 “군대 문화가 바뀌지 않는 이상 같은 피해가 반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가 군대에서 만난 여성 군인 대부분은 성추행 피해를 겪었어요. 우리나라 군대는 여성군인을 사람으로도, 군인으로도 보지 않고 그저 여성으로 봐요. 성범죄 원스트라이크아웃 제도를 도입한들 ‘한 번만 걸려도 가해자가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지니까 네가 참아라’라는 식이에요. 군대 내 성범죄 형량이 더 높아도 성범죄에 대한 그릇된 인식 때문에 실제 처벌은 너무 약해요. 성범죄는 군사법원이 아닌 민간법원에서 다뤄야 해요.”

그는 왜곡된 군 내부 문화가 문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성폭력 피해를 당한 동료 여성 부사관에게 ‘익명으로 신고하면 뭐해. 나인 걸 다 아는데’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폐쇄적인 군대에서는 모두가 피해 사실을 알아도 쉬쉬하고, 오히려 별일 아니라며 피해자를 압박하기도 해요. 이런 문화가 바뀌어야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할 수 있습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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