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누구에게도 일어나지 않기를 빌면서 세상을 바꿔나가겠습니다.” “더 이상 피해자들이 혼자서 고통을 삭이지 않도록, 무력감으로 이 일들이 끝나지 않도록 끝까지 연대하겠습니다.”
성추행 피해를 신고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아무개 중사를 추모하는
온라인 공간이 열렸다.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는 지난 7일 “군대 내 성폭력에 대한 방관과 은폐, 2차 가해사건을 잊지 말아달라.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해달라”며 ‘이 중사를 기억하는 온라인 추모공간’을 열었다. 8일 오후 3시 현재 온라인 추모공간에는 430개의 추모 포스트잇이 붙었다.
시민들은 이 중사의 죽음이 ‘없던 일’이 되지 않도록 기억하고, 사회 변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마음을 추모공간에 남겼다. ‘이 중사를 기사를 통해 처음 만난 평범한 20대 여성’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한 시민은 “성폭력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요란하게 변화를 약속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번번이 완전한 변화를 이룩하지 못했다. 군대 내 성폭력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여군이 이전에도 있었으나 군대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연히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당신에게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며 “어떠한 공간에서도 여성이 안전해야 한다는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른 시민은 “군 내 성폭력과 잘못된 대처, 미약한 처벌 그리고 억울한 죽음을 도대체 언제까지 봐야 하느냐”며 “주변 사람이 방관하고 가해자가 뻔뻔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은 그 집단이 해당 폭력행위에 무지하고, 알더라도 크게 처벌받지 않으리라는 경험지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폐쇄적인 집단에서 일어나는 폭력행위는 외부에서 개입해야만 한다”며 “군 내 성폭력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의 선례를 끊어달라”고 촉구했다. “군대 내 성폭력 및 성추행이 사라질 수 있게, 군인이 군인으로서의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게 계속해서 지켜보고 목소리를 내겠다”,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부터 함께하겠다”, “가해자가 똑바로 처벌받는 모습을 저희가 지켜보겠다” 등의 글도 이어졌다.
기본소득당 젠더정치특별위원회는 오는 10일 오전 11시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이 중사 추모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들이 온라인 공간에 남긴 추모 메시지를 낭독할 예정이다. 또 기자회견 이후 추모 메시지를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이 중사의 분향소에 전달할 계획이다.
한편, 이날 분향소에는 이 중사를 추모하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계속됐다. 서울 성북구에서 온 김영득(62)씨는 “군이 무책임과 회유로 이 중사를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며 “제가 몇 년 전 심장마비로 쓰러진 적이 있어 몸이 좋지 않지만, 이 중사가 너무 안타까워 찾아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서 온 강경화(55)씨는 “육군 병사였던 아들이 부대에서 괴롭힘을 당하다 2년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비슷한 경험을 해본 사람으로서 유족을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남편과 함께 분향소를 찾은 장아무개(57)씨는 “저희 딸도 현역 공군인데, 이 중사가 자식같이 느껴져 꼭 와야 할 것 같았다. 가슴이 먹먹하다”고 말했다.
김윤주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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