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과 ‘저출산’, 어떻게 다른가요
“출산과 양육을 둘러싼 젠더 관계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가 핵심인데, 그게 빠졌다.”
신경아 한림대(사회학과) 교수는 29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내놓은 첫번째 ‘저출생 대책’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출산한 기혼여성에게 양육을 강요하는 성별 분업 구조가 견고한 이상,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신 교수는 그동안 국가 성평등 정책 개발을 주도하고,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를 줄이기 위해 연구·자문 활동을 해왔다.
정부는 28일 범부처 과제인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과제 및 추진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한 데 따른 것이다. 이번 대책엔 양육·보육 환경 개선, 신혼부부 주거 지원, 육아기 노동시간 단축 지원 등이 담겼지만, 1~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도 포함됐던 ‘성평등’ 용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았다.
신 교수는 이에 대해 “성평등을 지워서는 저출생 대책이 전혀 소용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유를 정부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신 교수는 “직장을 다니지 못하고, 경력을 안정적으로 지속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삶의 불확실성 때문에 여성이 결혼과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서는 성평등이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노동시장에서의 성별 격차를 줄여나가는 것이 저출생 정책의 첫번째 과제”라고 강조했다. 현재 저출생의 원인 중 하나로 노동시장의 성차별 구조가 꼽힌다. 통계청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2022년 8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근로형태별 부가조사’를 보면, 여성 전체 임금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율은 남성(30.6%)보다 높은 46.0%로 조사됐다. 또 고용노동부의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 결과, 남성 대비 여성 임금비율(남성 노동자 임금을 100으로 볼 때 여성 노동자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2021년 기준 64.6%에 불과하다.
신 교수는 정부가 이런 불평등한 노동시장을 외면한 채 ‘육아기 재택근무 활성화’ 방안을 저출생 대책에 포함시킨 것에 대해 “여성에게 굉장히 불평등한 효과를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가사노동과 육아가 여성 몫이라는 성차별적 인식이 여전한 상황에서 육아기 재택근무를 여성이 더 많이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는 “육아기 재택근무에 최소한의 성별 균형이 전제돼야 한다. 성별 균형을 맞추려는 보완책 없이는 결국 여성의 부담만 늘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부는 난임 시술비의 소득 기준 완화와 난임 휴가 확대 등을 지원책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시술 안정성을 높이고, 시술 후 부작용, 후유증 등을 치료하는 정책은 빠졌다. 신 교수는 “난임 시술을 받는 여성의 신체적·정신적 고통, 심리적 압박감 등을 고려했을 때 시술비 지원에 머문 정책은 여성에게 ‘나는 아이가 생길 때까지 시술을 받아야 하는가’라는 두려움이 들게 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기존 가족 문화에서 남성이 해왔던 역할(남성은 생계 부양·여성은 자녀양육이라는 고정관념)에 변화가 없다면 어떤 변화도 불가능하다. 부부가 함께 아이를 키우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정부가 여성의 고민을 해소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 여성의 마음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생존해야 하니까.”
오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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