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
국제화, 세계화를 외치는 지금도 한국 사람들의 외국인 공포증은 상당하다. ‘대체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붙어 다니니? 말을 걸 수가 없어’라고 토로하던 외국인 친구에게 뭐라 할 말이 없어 ‘나는 한국 사람 아니냐?’라고 대꾸했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피가 섞이는 것’에 대한 한국인들의 공포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이며 인종적 감수성이 없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한때 한국어 선생님으로 영국에서 일한 적이 있다. 한국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한 동료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한국에서 선을 보고 결혼해 그해 영국에 오게 된 경우인데 남편이 박사 과정을 밟는 동안 ‘뒷바라지’를 하러 오셨고 심심풀이로 한국 학교에서 아이들을 돌보신다 하였다.
즐겁게 수다를 떨며 돌아오던 중 갑자기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효경씨, K선생님 있잖아, 영어 때문에 외국인(?) 남자 사귄대. 순전히 영어 배우려고. 저렇게 예쁘고 날씬한 여자가 못생긴 영국 남자 사귀면 의심해 봐야 되는 거지’라고 하셨다. 자, 그 자리에서 상대방의 체면과 앞으로의 관계를 생각해서 꾹 참은 내 질문을 이제 한번 물어보자. 영어 때문에 영국인 사귀면 무슨 큰일이 나는데?
연애를 시작하는 데는 누구나 목적이 있다. 당장 그 선생님도 조건 맞춰서 선보고 결혼하지 않았던가. 거기 대체 어디 ‘순수한 사랑’이 있단 말인가. 그놈의 순수한 사랑은 드라마에 있고 영화에 있고 소설에 있지만, 유일하게 현실에만 없는 것이다. 동포 사회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여전히 젊은 여자들이 외국 사람과 돌아다니거나 사귀는 걸 보면 양놈에게 안기는 ‘걸레’라느니, 목적이 있어서 그렇다느니,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저속한 말을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한심하다.
당신들의 연애는 얼마나 지고지순하고 아름답기에? 원래 연애란 상대방에게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발견하는 것이다. 조건 따져 선을 보는 것은 순수한 사랑이고 외국인과 사귀는 것은 흑심이라는 그 잣대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왜 외국까지 나와서 죽어도 한국밥, 한국사람 고집하며 남의 연애에 간섭하며 판단하려 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다. 솔직히 나는 한국 남자 뒷바라지하러 여기까지 온 그 선생님이 영국 남자 잘 만나 연애하는 다른 선생님보다 훨씬 불쌍했다.
이 대화로 내가 깨달은 바가 하나 있다면, 외국인을 사귈 때는 되도록 말을 생략하고 ‘순수하게’ 몸으로만 사귀라는 것. 그래야 한국 사람들이 당신이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어 줄 것이 아닌가.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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