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효경/칼럼니스트
2050 여성살이/
멀리 타국에서 떡국도 못 먹고 설날을 보낸 나에게 지금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묻는다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김밥이라고 말하겠다.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어디든 들어가서 김밥 한 줄 사는 건 일도 아닌 한국 사람들이 들으면 웃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김밥은 먹기 간편한 것에 비해 만들기는 아주 번거로운 음식이다. 일단 타국에서는 재료를 구하기도 힘들거니와 재료를 구한다 해도 밥이 너무 질어도 안 되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를 모두 따로 준비해야 하니 한 끼를 때우는 음식으로 전혀 수지타산이 안 맞는 느낌이다. 또 김밥은 금방 쉬어 버려 한 번에 왕창 만들어 냉장고에 오래오래 보관할 수도 없으니 혼자 사는 학생 신분에 정말 사치스러운 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있는 재료를 가지고 대충 김밥 비스무리한 것을 만들어 보았는데, 왠걸 자르기도 전에 김은 눅눅해지고 급기야 옆구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해서 통째로 한 줄을 들고 우적우적 씹어 먹어버렸다. 참 눈물 나는 맛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엄마의 김밥도 아주 예쁜 김밥은 아니었다. 기계로 찍어낸 것 같은 크기에 참기름과 깨가 반들반들거리는 ‘자랑할 만한’ 김밥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날에는 어김없이 엄마들의 솜씨 자랑이 시작된다. 다른 애들은 사각김밥, 삼각김밥, 누드김밥 등 온갖 기하학의 향연이 펼쳐지는데 내 김밥은 윤기도 없고, 예쁘지도 않고, 시커먼 우엉 같은 거나 들어가 있고, 그나마 그것도 신나게 달려오는 동안 옆구리가 다 터져서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내 도시락이 너무 부끄러워서 몰래 혼자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도 난다.
후회는 자식들의 특권이겠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배부른 고민이었구나 싶다. 엄마는 직장여성이셨다. 혼자 살아 보니 내 입에 밥 들어가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엄마는 자신도 출근해야 하는 그 바쁜 시간에 새벽잠을 포기하고 일어나 내 김밥을 쌌던 것이다. 예쁘진 않아도 직접 김밥을 싸주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엄마도 사람인데 왜 더 자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나는 ‘엄마 김밥은 너무 창피해. 다른 엄마 김밥은 얼마나 예쁜데!’라고 또박또박 엄마 가슴에 비수를 찔렀으니.
재료들이 각각 따로 노는 눈물 나는 김밥을 씹어 먹으며 엄마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그때 이야기를 꺼내 보니 엄마는 “어이구 가시나야, 그걸 지금 알았나?”라고 응수한다. 그래도 엄마, 내 김밥이 못생긴 건 엄마 닮아 그런 거 아니우? 오늘은 홍차 가게라도 들러 엄마에게 보낼 얼그레이를 골라 봐야겠다.
우효경/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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