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소설가
2050 여성살이
먼지를 뒤집어쓰며 설움의 세월을 겪었던 골드스타 선풍기가 더위를 맞아 해방을 누린 것도 잠시. 여름은 퇴각 중이다. 내 여동생 가족들도 여름과 함께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떠났다.
지난해 가을, ‘징허게 속창시 없는’(울 엄니 말씀) 이 언니가 미국으로 훨훨 날아갈 때 내 딸을 돌봐 주었던 이가 바로 이 여동생이다. 초등 1년과 유치원생 연년생 남매만으로도 바람 잘 날 없는데 ‘문제적’ 사춘기 소녀까지 졸지에 떠맡아 호되게 ‘이모 노릇’을 해야 했다. 수업 시간에 ‘문자질’하다 뺏긴 조카의 휴대전화를 찾아 주고자 박카스 한 상자를 사들고 학교를 방문하는가 하면 제 엄마가 대학 내 스윙댄스 클럽에 들어가 춤을 춘다고 (철들지 않은 이 여자의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은 지난해 가을 칼럼을 참고하시라) 저도 재즈댄스 학원에 다니겠다는 철없는 조카와 학생의 본분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이모의 애틋한 보살핌 덕에 딸은 엄마와는 비교도 안 되는 푸짐한 아침상을 받고 학교에 다녔고 외둥이로 자라다 어린 동생들과 공존의 일상을 경험하며 할리우드 가족영화에서나 보았던 모범적(?) 가정의 구성원이 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 애는 우리 모녀가 이국의 여행길에서 부쳐 주는 엽서를 식탁 위 벽에 가지런히 붙여 놓곤 했다. 우리가 먼 길을 떠날 때마다 딸에게, 넌 엄마 잘 만나서 좋겠다, 이모는 이 나이 되도록 외국 한 번 못 나가 봤는데, 라며 부러움으로 용기를 불어넣어 주던 그 애가 나이 마흔에 운동화 끈을 단단히 매고 먼 길을 떠난 것이다.
공무원인 남편의 유학이 결정되자 그 애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문화센터 양재반 등록. 미싱을 돌려 애들에게 옷을 만들어 입히더니 나중엔 미용기술까지 손에 익혔다. 그러다 떠나기 전 그 애가 작별 선물이라며 내게 내민 것은 제 손으로 만든 천 생리대. 보라색 꽃무늬 패드를 받고서 미안해서 한다는 소리가, 폐경, 아니, 완경이 오늘내일 하는 사람한테 뭐 이런 걸 선물해? 예쁘다고 감탄하고 있던 내 딸, 이모 고마워! 울 엄마는 쓸 일 없으니까 내가 잘 쓸게.
사랑하는 아우야, 건강하게 잘 있다 오거라. 뭐든지, 어디서든 잘 모르겠다 싶으면 물으면 되는 거야. 사람 사는 데 어디나 다 같거든. 네가 모르는 건 남들도 모르는 거니깐 자꾸 묻는 건 세상에 좋은 일 하는 거란다. <칼라 퍼플>의 셀리와 네티 자매처럼 우리 다시 만나는 날엔 서로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달려가자꾸나. 김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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