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탐험의 기본’을 잊게 하다 / 사진가 남영호의 마르코 폴로 책
[매거진 Esc] 여행에서 건진 보물- 사진가 남영호의 마르코 폴로 책
사진가 남영호(31)씨는 지난해 5월초 중국 톈진을 출발해, 파키스탄, 이란, 터키, 불가리아,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이탈리아,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에 도착했다. 사진기자로 일하던 월간 <마운틴>을 그만두고 손수 ‘대원’을 모집해 벌인 ‘유라시아 자전거 횡단’이었다.
모험의 후반부 크로아티아에서였다. 무리하게 자전거를 타다가 몸에 탈이 난 그는 일행을 먼저 보내고 노바그라디스카에서 쉬고 있었다. 빈둥거리다가 한 헌책방에 들어갔다. ‘마르코 폴로’라는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서양에서 동양으로 온 마르코 폴로의 여정이, 동양에서 서양으로 향하는 그의 여정과 겹쳐서 책을 집어 들었다. 그때 헌책방 주인이 던진 말. “마르코 폴로가 크로아티아 출신이라는 걸 아나요?”
남씨는 하드커버 재질의 두꺼운 마르코 폴로를 사고 말았다. 먼지 조각 하나라도 무게를 줄여야 할 판인데, ‘탐험의 기본’을 잠시 잊은 것이다. 심지어 읽지도 못하는 크로아티아어였다.
남씨는 거사를 앞둔 탐험가다. 내년 3월 아마존강의 원류인 페루 네바도미쓰미에서 대서양의 항구도시 브라질 벨렘까지 6800여㎞를 무동력으로 혼자 완주할 계획이다. 세계적인 탐험가 마이크 혼 밖에 해내지 못한 기록이다. “한국의 탐험 문화가 고산 등정에만 쏠려 있거나 정복주의적인 태도에 머물러 있는 게 사실이에요. 강, 밀림, 극지, 사막으로 탐험을 다양화하고 환경 메시지를 싣고 싶어요.”
사실 230일 18,000㎞의 자전거 횡단은 그의 말처럼 “스스로를 시험해 보는 작업”이었다. 그는 아마 이번 탐험에서 책을 사는 것 같은 탐험 기본을 위반하는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아마존의 밀림에는 헌책방이 없으니까.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사진 남영호 제공
사진 남영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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